너무도 쓸쓸한 당신
박완서 지음 / 창비 / 199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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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 년이 더 넘게 지나서 다시 읽게 된 소설이다. 장편소설이라면 줄거리라던가, 주인공들이 기억 속에 남아 있으련만, 이 소설 분명 내가 읽은 흔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이렇게 머리 속에서 사라져 버릴 수 있는지.

 

구체적인 내용은 생각이 하나도 나지 않고, 소설의 전체적인 분위기만 어렴풋이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고 있었다. 시간은 인간에게서 기억을 앗아가고 막연한 느낌만 남게 하는지.

 

어쩌면 내용이 기억나지 않기 때문에 다시 읽을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결말에 대한 호기심이 계속 생기니 말이다.

 

하지만 그래도 내용이 기억났으면 더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을 한다. 영화도 한 번 볼 때와 두 번 볼 때 다르고 또 세 번 보면 더 다르듯이 소설도 마찬가지 아닌가. 내용도 기억하고, 주인공 이름도 기억하면서 다시 읽으면 그간 생각 못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할텐데 하는 아쉬움.

 

1999년에 이 소설을 구입해서 읽었다. 분명 읽었다는 사실은 기억했다. 왜냐하면 소설을 읽어가면서 소설 속의 분위기가 계속 마음 속에서 떠올랐기 때문이다.

 

특히, '환각의 나비'를 읽을 때... 이 소설집에서 두 번째 실려 있는 이 소설을 읽으며 확실히 예전에 읽었음을 되살려 낼 수 있었는데...

 

전체적으로 소설의 분위기가 쓸쓸하다. 제목에서도 '너무도 쓸쓸한 당신'이라고 하지 않나. 소설의 주요 서술자(주인공)들이 나이든 사람들이다. 이미 인생의 경험을 어느 정도 한 사람들. 여기에는 중년에 접어든 사람도 있고, 노년에 접어든 사람도 있다.

 

서술자와 상관없이 주인공들은 대부분 노인들이다. 이미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 살 날보다는 산 날이 훨씬 더 많은 사람들. 이들이 인생의 지혜를 알려주었으면 좋으련만, 그러면 소설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듯이, 이들은 우리들에게 문제를 제기한다.

 

이런 것이 인생이라고, 인생은 이렇게 우리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인생 말년을 행복하고 화사하게 보내고 싶어하는 것이 인간의 마음이라지만 현실은 그렇게 되지 않는다고,

 

특히 '길고 재미없는 영화가 끝나갈 때'에서는 평생을 깨끗하게 살아가려고 했지만 죽음을 앞두고 가장 더러운 모습을 보일 수 밖에 없었던 서술자의 엄마 이야기에서 우리네 인생은 자신의 뜻대로만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그렇더라도 그렇게 노년이 추한 것만은 아니다. 그렇게 살아온 인생 역시 하나의 삶으로서 인정을 받아야 한다. 이 책의 제목이 된 '너무도 쓸쓸한 당신'에서는 가장으로서의 의무를 다하려는 남편을 소설의 끝부분에서 비로소 인정하게 되는 주인공을 보면서, 화사하든 비루하든 그것은 인생으로서 가치가 있음을 생각하게 한다.

 

유일하게 젊은이(그래도 나이가 30이다)가 나오는 소설이 '공놀이하는 여자'인데, 여기서도 녹록치 않은 삶의 신산한 모습이 나오고 있으니... (과연 이 결말이 행복한 결말인지 생각하게 된다)

 

총 9편의 단편 소설이 실려 있는데, 분위기가 대체로 쓸쓸하다. 계절로 따지면 가을이 질 무렵 정도 된다고 보면 된다. 그런 쓸쓸함, 그렇지만 인생을 긍정적으로 바라봐야만 한다는 사실...

 

여기에 김용택의 시 '그 여자네 집'을 아예 인용해 소설을 시작하는, 그러나 전체적으로 슬픈 내용을 지닌 '그 여자네 집'은 지금도 우리에게 유용하다. 왜 갑분이와 만득이가 함께 살지 못했는지... 그런 현실,, 마지막에 늙은 만득이가 하는 말, 누군가에게 그대로 들려주고 싶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이 문제는 지금도 진행형이니 말이다.

 

"...나는 정신대 할머니처럼 직접 당한 사람들의 원한에다 그걸 면한 사람들의 한까지 보태고 싶었어요. 당한 사람이나 면한 사람이나 똑같이 그 제국주의적 폭력의 희생자였다고 생각해요. ... 그 천인공노할 범죄를 잊어버린다면 우리는 사람도 아니죠. 당한 자의 한에다가 면한 자의 분노까지 보태고 싶은 내 마음 알겠어요?"  - 그 여자네 집 마지막 부분에서... 2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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