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백한다 - 정도전 암살 미스터리
이재운 지음 / 예담 / 2008년 1월
평점 :
절판


조선 건국의 공신, 그러나 비운의 죽음을 맞이한 혁명가. 왕보다는 신하의 권리를 더 주장한 사람, 그래서 왕권과 신권의 대립 속에서 왕권 강화를 위해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던 사람.

 

조선의 기초를 다진 사람, 지금도 그의 흔적은 곳곳에 남아 있는데, 특히 경복궁에는 그가 지은 이름들이 남아 그의 사상을 드러내고 있으니, 그는 자신의 사상을 한 나라의 기본 사상으로 만드는데 성공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죽음과는 상관없이, 그에 대한 평가와는 상관없이.

 

어쩌면 그는 그 먼 과거에 입헌군주제를 주장했다고 할 수 있는 정치가이기도 하다. 왕 하나에 어떻게 나라를 다 맡길 수 있느냐고, 현명한 신하들이 정치를 주로 하고, 왕은 나라를 대표하면 된다는, 신하의 의견을 정치에 반영해야 한다는 신권(臣權)을 주장한 것은 지금에서 보면 입헌군주제를 주장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입헌군주제는 유럽의 여러나라에서 채택하고 있는 정치제도이기도 하고.

 

그러나 그는 시대를 너무 앞서 태어났다. 중세 시대에, 그것도 왕이 다스리지 않는 나라를 꿈꾸지 못하던 시대에 신하의 권리, 신하 중심의 정치를 주장한 그가 용납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특히 자기들이 나라를 세웠다고 생각하는 세력들에게는 더더욱 말이다. 그러니 태종 이방원에게 정도전은 눈엣가시였을테고, 어떻게든 그는 왕권 강화를 위해서는 제거되어야만 했을 대상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는 제거되었다.

 

그 다음 태종이 얼마나 왕권을 강화했는지는 너무도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정도전은 역적죄로 죽어야 했다. 역적죄란 무엇인가? 삼족을 멸한다는 죄이다. 직계 가족은 물론이고 방계 친족들도 피해를 입어야 하는 죄다.

 

여기서 소설은 출발한다. 정도전 아들의 관점에서. 이상하지 않는가. 역적죄로 죽었을텐데, 정도전 아들의 관점이라니... 정도전 아들이 살아있어? 어떻게? 이런 의문에서 소설이 출발한다.

 

신기하게도 정도전의 아들은 정도전이 죽은 지 16년이 지나서 복권이 된다. 그리고 그는 세종 때에는 높은 벼슬 (형조 판서- 요즘 말로 하면 법무부 장관쯤 된다)까지 하게 된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이게 바로 역사소설의 묘미다. 재미다. 역사에서 비어 있는 한 틈을 찾아 그 틈을 작가의 상상력으로 메우는 것. 그것도 참으로 사실적으로.

 

소설은 정도전을 명나라와 조선의 세력 다툼 사이에 낀 희생양으로 만들고 있다. 명나라를 건국한 주원장이 명나라에 위협이 되는 존재로 조선을 꼽고, 그 중에서도 정도전을 가장 위험한 인물로 지목하고 제거하려고 했다는 것.

 

여기에 지나치게 신권이 커지자 불안감을 느끼고, 또 조선의 건국에 아무런 공이 없는 배다른 아우 방석이 세자가 되자 불만을 가진 이방원이 주원장과 결탁하여 조선의 안정과 발전이라는 명목으로 정도전을 제거한다는 내용.

 

정도전을 제거하되, 정도전의 사상이 나라 통치의 방향과는 맞기 때문에 그가 제시한 정책들을 따르겠다고, 자손들에게도 피해가 가지 않겠다고 정도전에게 약속을 한다는 그런 내용.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빈 틈을 이런 상상력으로 채워나가고 있는 소설이다. 그렇다. 정도전의 자손들이 어떻게, 그것도 큰아들이 정도전이 그렇게 죽어갔음에도 중용되어 벼슬을 했는지 의문이었는데, 이 의문을 상상력으로 채워넣었으니...

 

아들의 관점에서 내용이 전개되고 또 소설이 긴박하게 전개되고, 문장도 잘 읽혀서 읽는데 문제가 없는 소설이다. 재미도 있고, 역사의 빈 틈을 메우려는 상상도 해볼 수 있고.

 

다만, 이 소설에 나온 내용을 사실(史實, 事實)로만 믿어서는 안 된다는 점. 역사소설은 역사보다는 '소설'에 더 강조점을 두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읽으면 읽는 재미가 쏠쏠한 소설이다.

 

내가 읽은 소설은 옛날 판이라 절판이 되었고, 새로운 제목으로 책이 다시 나왔던데... 제목을 살펴보니 내용이 그리 대폭 수정이 된 것 같지는 않고.

 

새로운 제목은 "칼에 베인 용" (책이 있는 마을, 2015년)이다.

 

덧글

 

읽으면서 좀 거슬렸던 장면이 몇 있는데...

 

우선 하나는 아들인 정진이 복수를 다짐하면서 춘추전국시대의 오자서(오원) 예를 들면서 오자서에게는 부차와 손무가 있었다고 하는데... 오자서에게는 오왕 부차가 아니라 합려 아닌가. 부차에게서 죽음을 명령받은 게 오자서일텐데... (170쪽 등)

 

또 하나는 장량이 항우를 황제로 만들었다고, 정도전을 장량에 이성계를 항우에 비기는 대사가 나오는데, 장량은 항우가 아니라 유방을 황제로 만들었다. (181쪽)

 

개정판에서는 고쳐졌을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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