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으로 본 한국현대사
한승헌 지음 / 창비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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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없는 사람들이 최후로 기댈 곳은? 정답이 '사법부' 였으면 좋겠지만,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했다. 이 말은 힘없는 사람들이 최후로 기댈 곳은 '없다'가 정답이었단 말이다.

 

그런데... 힘없는 사람들만 그랬을까? 아니다. 나름대로 사회에서 인지도가 있었던 사람들, 정치적으로 힘이 있었던 사람들도 사법부에는 기대지 못했다. 아니, 사법부가 그들에게 힘이 되어주길 바라지는 않았지만 최소한 '정의'를 지킬 수는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그렇지 못했다고 하는 편이 좋겠다.

 

그런 오욕의 역사가 바로 우리나라 재판의 역사, 사법부의 역사 아닐까 한다. 이런 생각이 더 확고해진 것은 바로 한승헌이 쓴 이 책, "재판으로 본 한국현대사"를 읽고서다.

 

물론 한승헌이 쓴 "권력과 필화"라는 책에서도 재판부의 한심한, 강자에게는 한 없이 약하고, 약자에게는 무한히 강한 모습을 보기도 했고, 사법부의 오욕의 역사에 대해서는 한홍구의 "사법부"에서 통렬하게 느끼기도 했지만...

 

한국현대사를 재판을 중심으로 서술해 간 이 책을 통해서도 참 한심하다는 생각을 했다. 공부를 그렇게 하고, 사회에서 나름 힘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고, 자신들은 정의를 실현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삼권분립의 한 권력기구인 사법부가 이토록 눈치보며 재판을 했다는 사실.

 

그것이 우리나라 현대사였다는 사실이 부끄럽고, 창피하고, 그런 그들이 아직도 부끄러움을 모르고 마치 사회지도층인 양 행세하고 있는 꼴이라니, 그런 그들이 그렇게 행동하게끔 우리가 어떤 제재도 가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서글퍼지는 책읽기였다고나 할까.

 

첫 시작을 몽양 여운형 암살 사건에서 시작하여 마지막을 고 노무현 전대통령 탄핵심판 사건으로 마무리하고 있다.

 

해방이 된 직후 좌와 우의 대립이 심할 때 좌우합작을 주장했던 정치인, 국민들의 신망을 받고 있던 여운형이 암살되었는데, 그 재판이 어떻게 졸속으로 처리되었는지 책의 처음부터 우리 역사가 왜곡될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온갖 민주화 투쟁에 대한 탄압 사건들... 그런 사건들이 모여 우리 현대사를 만들어 왔는데, 물이 서서히 데워지다 특정한 온도가 되면 펄펄 끓어 수증기로 변하듯이 우리 역사도 이런 사건들이 하나하나 모여 결국 민주화라는 큰 흐름을 이끌어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다음이 문제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화를 우리는 과연 이루어내고 있는가? 이 책은 고 노무현 전대통령 재판으로 마무리되었지만, 그 이후 우리 사회를 격동에 빠뜨린 재판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리고 그 판결들이 과연 과거로부터 나아졌는지 생각해 보면 고개를 끄덕일 수 없는 부분이 많다. 우리는 무엇을 이루었던가? 우리가 이룬 것이 과연 민주주의 맞나? 이제는 형식적, 절차적 민주주의 마저도 위협 받고 있지 않은가?

 

어떻게 이렇게 처참한 역사 기록들이 남아 있고, 재판이라는 특성은 판결의 주체가 명시되어 있어서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런 일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아직도 떵떵거리며, 큰소리치며 지내고 있는지...

 

부끄러운 역사다. 극복해야 할 역사다. 그래서 이런 책이 소중한지도 모른다. 잊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다만, 이 책이 '재판으로 본 한국현대사'라는 제목을 달고 있지만, 한국현대사라는 제목보다는 "한국정치사"라는 제목을 달아야 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주로 내용이 정치적인 내용이기 때문이고, 주요 사건들 역시 지식인들과 관련된 내용이지 노동자, 농민에 대한 내용은 없기 때문이다.

 

강물이 도도히 흘러가는데 그 강물의 표면에서 일어난 일들이 바로 이 책에 나온 지식들의 재판들이라면, 강물이 쉬임 없이 흘러가게 만드는 힘, 강물의 아래에서 끊임없이 흘러가는 그런 힘은 노동자, 농민을 비롯한 민중에게서 나오는데, 이 책은 그런 민중에 대한 재판 이야기는 없다.

 

어쩌면 한승헌 변호사가 자신과 관련된 재판, 또는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재판을 중심으로 책을 써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이 책에 나온 재판에서 형을 선고받고 수형생활을 한 사람들, 나중에는 어떤 식으로든 (인혁당 재건위 사건처럼 사형 집행이 이루어져 어떻게든 보상을 받을 수 없는 사람들은 제외하고, 그래도 대부분은) 보상을 받았다는 점에서 전혀 보상받지 못한 민중들의 사건이 빠진 것이 아쉽다.

 

막강한 변호사들의 도움을 받을 수 없었던 민중들은 재판에서 억울해도 어쩔 수 없이 힘 한 번 못 써보고 감옥에 간 경우가 많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 일은 그들의 삶을 황폐하게 하고 또 가족들의 삶까지 송두리째 앗아가지 않았겠는가.

 

그럼에도 우리 역사가 이렇게 민주화를 향해 나아간 것은 그들이 있었기 때문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물론 이 책에서 다루지는 않았지만 이 책의 저자도 그 점을 잊지는 않았으리라. 다만 명확하게 우리 현대사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중심으로 서술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앞에서 언급한 한승헌의 "권력과 필화" 한홍구의 "사법부"와 함께 읽으면 좋을 책이다.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해서, 자꾸 반복하고 있는 듯한 우리 역사의 바퀴를 제대로 굴리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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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이소오 2016-07-28 08: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쓰려했으나 미처 쓰지못한 책인데
리뷰를 보니 반갑네요. ^^

kinye91 2016-07-28 17:14   좋아요 1 | URL
같은 책을 읽었다는 분이 있음에 저 역시 반갑고 기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