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불십년(權不十年),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모든 정치인들이 명심해야 할 말이기도 하다. 아니, 정치인들만이 아니라 어떤 일에서 남의 앞에 또는 위에 서려는 사람들이 명심해야 할 말이다.

 

그런데, 거의가 이 말을 잊고 산다. 위에 올라가면 세상이 너무도 작게 보이므로, 아래 살고 있는 사람에게는 너무도 중요한, 어쩌면 그들의 생사가 왔다갔다 하는 문제도 저 위에서 보면 하찮은 일에 불과하므로, 그들은 이를 무시하기 십상이다.

 

보려고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보아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 너무도 위에 있으므로. 그들은 치열하게 위에 올라갔고, 그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기만 하기 때문이다.

 

비행기 안에서 창문으로 아래를 내려다 보라. 사람들은 아예 보이지도 않고 커다란 건물들이 성냥갑보다도 작게 보이고, 밑에서 보면 감히 오르려 생각도 못하는 산봉우리들이 작은 모래성처럼 보이니...

 

그러니 위에 있는 사람이 생각하는 것이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같을 수가 없다. 아래에서는 삶이 걸려 있는 치열한 일들이, 위에서는 별것 아닌 것처럼 생각되고 이야기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한 말들이 정책이 되어 아래로 내려오면 아래에 살고 있던 사람들... 정말 힘들어진다. 힘들어서 아우성을 치면 저것들이 왜 저러나 할뿐...

 

그들의 힘겨움에 대해서 알려고 하지 않는다. 아니, 알지 못한다. 처한 자리가 다르기에. 이때 해결책은 하나다. 자신이 아래로 내려오는 것.

 

어쩌면 레임덕이란 현상은 이렇게 아래를 보라는 충고일지도 모른다. 위에만 있으면 모른다고, 당신도 다리를 저는 양처럼 아래에서 뒹굴어보아야 한다고. 그래야 아래 사람들의 생활이 보인다고. 그들의 생활을 알 수 있다고.

 

레임덕을 정권누수로 생각하지 말고, 자신의 정책을 돌아보라는 신호로 받아들인다면... 그 정치인은 존경받는 정치인이 되겠지.

 

고은의 "순간의 꽃"이란 시집을 읽었다. '고은 작은 시편'이란 작은 제목을 달고 있는 짧은 시들의 모음이다. 제목은 없다. 그냥 짧은 시들이 연속될 뿐이다.

 

이 중에서 이 시... 레임덕으로 괴로워하는 정치인들이 읽으면서 '아하!' 할 수 있는 시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정치인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도 해당하는 시이겠지만.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고은, 순간의 꽃, 문학동네. 2014년. 1판 22쇄. 50쪽.

 

이렇게 되지 않으면, 다음 시처럼 되지 않을까. 우리가 이런 비극은 막아야 하지 않을까. 이것이 과연 시에서만 존재하는 일일까? 혹, 우리나라 정치는?

 

옛 시인

나라는 망하건만

산하는 있네라 하였도다

 

오늘의 시인

산하는 망하건만

나라는 있네라 하도다

 

내일의 시인

오호라

산하도 망하고

나라도 망하였네

너도

나도 망하였네라 하리로다

 

고은, 순간의 꽃, 문학동네. 2014년. 1판 22쇄. 35쪽.

 

시인은 앞날을 내다볼 줄 안다고 하는데... 이런 시인의 말을 '카산드라의 예언'처럼 들으면 안 되는데... 그건 비극인데.

 

이런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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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미원주 2016-07-25 1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인이 예언자 역할을 하는 것 같네요. 함축된 언어로.

kinye91 2016-07-25 09:09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시인을 `잠수함의 토끼`나 `탄광의 카나리아`라고 하기도 하던데, 시인의 감수성, 민감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