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인환문학상' 수상시집을 헌책방에서 발견했다. 무얼 망설이랴. 그냥 집어들고 계산을 했지.
박인환이라 하면 모더니즘 시의 기수라고 하지만, 그를 어떤 유파에 넣기보다는 노래로 불려진 '세월이 가면'과 어느 한 구절을 흥얼거리게 되는 '목마와 숙녀'의 시인으로 기억된다.
'한 잔의 술을 마시고...'이렇게 시작되는 "목마와 숙녀" 내용을 이해할 필요도 없다. 그냥 흥얼거리기만 하면 된다. 무언가 쓸쓸한 분위기... 그 분위기에 젖어 가느다랗게 읊조리는 시.
그런 시를 우리에게 남겨준 시인. 비록 그는 일찍 세상을 떴지만, 우리에게 이런 시들을 남겨 주었다. 그리고 그의 이름을 딴 문학상도.
2002년 제3회 수상시집이다. 박찬일의 '우주 나무'라고 제목이 되어 있지만, 시집을 보면 박찬일의 작품을 '나는 푸른 트럭을 탔다'외 라고 되어 있으니... 한 작품으로 수상한 것은 아니고, 5편의 시로 수상했다고 보면 된다.
이 중에서 짧다고 할 수 있는 '우주 나무'란 시가 마음에 들었다. 스케일이 크다. 우주를 통채로 집어 삼키고 있다. 우주를 하나로 연결하는 나무... 우주 나무. 그 우주 나무 속에는 혹성들도 사람들도, 동물들도 다른 생명체들도 모두 함께 있다.
너와 나 구분없이 우주 나무 속에 있다. 하나다. 거대한 하나. 이 하나는 분별을 통해 차별을 하지 않는다. 그냥 함께 갈 수밖에 없다.
공동 운명체...
어쩌면 우리 인간이 바로 이러한 공동 운명체 아니던가. 그런데도 우린 한사코 우리 인간들이 모두 공동 운명체란 사실을 부정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하게 된다.
뿌리로 하나가 되어 있는 우주 나무처럼 우리 역시 무언가로 모두 연결되어 있다. 과거와 미래, 그리고 이곳과 저곳이 모두 연결되어 있다. 그것을 우리가 느끼든, 느끼지 못하든 우리는 홀로 존재할 수는 없다.
이 시를 읽으면 그 점을 생각하게 된다. 그렇다면 지금 이 세계는 어떤가? 세계 도처에서 벌어지는 살상들, 무기 구입들, 자본을 둘러싼 갈등들, 자원을 둘러싼 갈등들...
하나인 지구를 여러 국경으로 갈라놓고 너니 나니 하고 있는 현실. 피부에 따라 국적에 따라 종교에 따라, 경제여건에 따라 엄청나게 구분짓고 갈라놓으려고 하고 있는 현실.
이런 현실에서 우주 나무는 헛웃음을 짓고 말리라. 그래봤자 너희는 하나일 수밖에 없다고. 다 이렇게 연결되어 있다고. 그러니 허튼 수작 부리지 말고 하나라는 점을 인정하고 공동 운명체임을 깨닫고 함께 살아가는 연습을 하라고.
함께 살아감도 어느 순간 갑자기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부단한 연습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므로.
뒤숭숭한 세상... 이 시는 그런 세상이 얼마나 우스운지ㅡ 우리는 우물 안 개구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해주고 있다.
읽어 보자.
우주 나무
섬이, 깊어지면서 한없이 두꺼워지는 것처럼
다른 섬의 뿌리를 만나 하나가 되는 것처럼
혹성이 하나의 섬인 것처럼
우리 사랑도, 두꺼워지기를
우리도 뿌릴 만나 하나로 엉키기를 하나로 솟구치기를
혹성을 덮어 혹성을 삼키고
혹성 밖으로 뻗어 다른 혹성을 삼켜
우주 나무가 되기를
우주를 삼키기를
제3회 박인환문학상 수상작품집. 예맥. 2002년 초판. 박찬일, 우주 나무. 1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