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논어에서 얻은 것 - 삶이 흔들릴 때 나를 잡아주는 힘
사이토 다카시, 박성민 / 시공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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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학교 교육에 대해서 생각하면 이런 말이 먼저 떠오른다.

 

"언행불일치(言行不一致)"

 

이상하다. 교육의 목표는 말과 행동이, 지식과 행동이 일치하도록 이끌어내는 일일텐데, 왜 자꾸만 우리나라 교육을 생각하면, 특히 교육을 많이 받으면 받을수록 언행이 불일치되고, 지식과 행동이 반대로 간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지.

 

우리나라 교육의 목표는 깊게 생각하지 않아도, 찾아보지 않아도 분명히 민주시민 양성 어쩌고 저쩌고 하는 것일테고, 민주시민이란 남을 배려하면서 자신의 삶을 바르게 살아가는 사람일텐데...

 

지금 사회가 돌아가는 꼴을 보라. 많이 배운 사람들이 자신들의 지식을 이용해서 어떻게 이득을 얻는지, 자신들의 지식을 이용해서 어떻게 바른 길에서 벗어나는지.

 

그래서 우리나라 교육의 핵심은 철저한 "언행불일치"이지 않을까 싶다. 언행이 불일치 하면 높은 자리에 올라가 호의호식하면서 남들 위에 군림하고, 언행이 일치되면 낙오되는 현실. 씁쓸하지만 이것이 지금 현실을 정확하게 반영하는 말이지 않을까 싶다.

 

이러니 학생들은 오로지 대학이라는, 그것도 명문대라는 곳에 진학하기 위해 다른 것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

 

도덕, 윤리? 이것은 교과서에만 있는 말이다. 언행일치, 지행일치. 시험 문제에서 정답을 고를 때만 쓸모있는 말이다. 

 

명문대학에 들어가거나 바른 삶을 살 때 이런 말들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냥 교과서와 함께 버려지고 마는 말이다. 이게 바로 교육의 현실이다.

 

왜, 이런 생각이 들었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제목이 "내가 논어에서 얻은 것"인데...

 

"논어(論語)"라는 책은 공자의 말을 적어놓은 책이고, 동양고전이며 사서삼경 중의 하나라는 기본적인 지식에다, 우리나라에서 학교 생활을 했다면 한 번쯤 들어봤음직한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易說乎 -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라는 말이 등장하는 책이지 않은가.

 

동양 최고의 성인인 공자의 말을 모아놓은 책, 그 책의 첫부분이 바로 배움으로 시작한다. 그런 배움이 곧 교육이었고, 공자는 말을 통해서 제자들을 가르쳤다. 단지 말뿐이었을까?

 

공자의 말은 곧 행동이었다. 공자의 말은 공자 자신이었다. 공자의 삶이었다. 공자에게서 말과 행동은, 지식과 행동은 떨어질 수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유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유학의 가르침을 자신의 삶에서 실천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교육이었다. 공자와 제자들, 고대의 학교라고 할 수 있는 그런 장소, 만남, 교육들은 실천을 바탕으로 한다. 단지 번드르한 말, 자신의 출세를 위한 말, 남을 누르기 위한 말들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논어에서 배운 것"이라는 제목을 보았을 때 우리나라 교육현실이 생각이 났고, 일본에 유학을 전파해주었다고 큰소리치는 우리들이 정작 유학에서는 멀어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논어"는 삶을 다룬다.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가? 이것이다. 공자는 죽음에 대해서 묻는 제자에게 삶도 모르는데 어떻게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하겠느냐고 했고, 안다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얘기하는 것이 진짜 아는 것이라고 했다.

 

이 말은 바로 현세의 삶, 교육과 삶이 떨어질래야 떨어질 수 없는 관계라는 뜻이고, 자신이 무엇을 알고 모르는지 알게 된다면 자신의 삶에서 자신이 실천하는지 하지 않는지도 안다는 것이다. 실천하지 않은 '앎'은 진정한 '앎'이 아니라는 얘기가 성립하는 것이다.

 

그래서 공자의 이 책 "논어"가 수천년이 흘렀음에도 지금까지 우리에게 읽히는 것이다. 우리 삶을 되돌아보고 바른 삶으로 우리를 이끌어가기 때문이다.

 

비록 이 책에는 논어의 원문이 나와 있지 않고 (번역문만 있다) 또 논어 전편이 실려 있지도 않지만 대학교수인 자신이 "논어"를 읽으며 느꼈던 점, "논어"에서 우리 삶에 참조할 만한 내용들을 골라 싣고 있다.

 

일반인들도 읽을 수 있도록 ("논어"를 원문인 한문으로 수록하면 그것을 읽어낼 사람은 별로 없고, 또 그냥 해석만 해도 역시 "논어"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사람도 그다지 많지 않은 현실에서 누구나 "논어"를 가까이 할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이렇게 썼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경험과 자신의 생각을 펼치고, 그에 해당하는 "논어" 구절을 현대어로 풀이해 함께 보여주고 있다.

 

"논어"를 통해서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을텐데, 이 책에 실린 내용 말고도 더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음은 물론이다. "논어"를 제대로 읽지 않은 사람에게 "논어"라는 책이 아스라이 먼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현재 우리 삶을 풍부하게 해줄 수 있는 지침서가 될 수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는 책이다.

 

덧글

 

조금 아쉬운 점은 일본인 저자라서 일본의 예를 들고 있는 경우가 있는데, 그 경우 우리의 정서와는 조금 안 맞을 수도 있다. 메이지 시대의 일본 지식인들이 맥아더에게 인정을 받았다고 하는데... 그때는 "논어"와 같은 고전을 읽은 사람들이어서 그랬다는... 그렇지만 그들이 군국주의로 가서 얼마나 많은 잘못을 했는지... 그것은 "논어"를 제대로 읽어냈다고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런 한계는 우리 관점에서 잘 정리하면서 읽으면 될 테다. 

 

출판사에서 책을 보내주었다. 손님처럼 집으로 온 책은 언제나 반갑다. 그리고 고맙다. 덕분에 잘 읽었다. 나는 언행일치, 지행일치의 삶을 살고 있는가 반성하면서 읽은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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