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 순례. 습관적으로 헌책방에 가게 된다. 가고 싶어진다. 가서 어떤 책들이 다른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지 보고 싶어진다.

 

그래서 한 달에 한 번은 헌책방에 가게 된다. 다른 여러 곳의 헌책방을 다녔으면 좋겠지만, 인간의 습관이란 왜 이리 무서운지 늘 가던 곳으로만 가게 된다.

 

길이 처음부터 있던 것이 아니라 계속 반복해서 밟으면서 다녀서 생기게 되었듯이, 헌책방도 자주 가는 헌책방으로만 가게 된다.

 

무엇보다 펀하기 때문이다. 책이 꽂혀있는 위치를 잘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습관이 때로는 더 다른 책, 평소에 관심이 없었지만 갑자기 내 맘으로 들어오는 책을 만나기 어렵게 한다.

 

하지만 어쩌랴. 이것도 좋은 걸. 그렇게 해서 만난 책이 바로 이 시집이다. 현대문학상 48회 수상시집.

 

나희덕이 수상을 했다. 나희덕 시집도 두세 권 있으므로, 아마 이 수상시집에 있는 시들도 어느 시집에선가 보았을 수도 있다. 그래도 좋다. 다른 시인들도 있으니... 사고 본다. 그리고 펼쳐든다.

 

꼼꼼하게 한 편 한 편 읽기도 하지만, 한 번 훅 훑어보기도 한다. 훑어보다가 마음에 콕 박히는 시가 있으면 됐다. 그 시집은 그 시 한 편으로 제 역할을 다 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렇게 읽는데, 엉뚱하게도 이번에는 첫시에서 멈췄다. '마른 물고기처럼'이라니. 마른 물고기란 자기가 살던 곳에서 쫒겨난 물고기 아닌가.

 

지금 우리나라는 조선업계의 구조조정으로 시끄럽지 않은가. 해운강국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반도국가라는 말이 무색하게 조선업은 사양산업이 되었고, 이상하게도 자본가들은 망해도 살아갈 길을 다 마련한 반면에...

 

그때까지 정말 밤낮없이 일한 노동자들은 이렇게 '마른 물고기'가 되어 버렸지 않은가. 그들은 서로에게 수분을 주기 위해 침을 뱉지만, 택도 없는 일. 구조조정이라는 밥상에 올라버리고 만다.

 

이래서야 되갰는가. 왜 이 시가 지금부터 13년 전에 수상한 이 시에서 지금 조선업계를 떠올리게 되는지... 왜 우리 노동자들은 아직도 이렇게 '마른 물고기'가 되고 말았는지... 그래서 자본의 밥상 위에 올라버리고 마는지.

 

그래서는 안 된다. 노동자들이 두려움에 쌓여 살아가도록 하면 안 된다. 노동자들은 풍부한 물 속에서 서로서로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 그들은 절대로 '마른 물고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

 

물을 퍼내 버린 자본가들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물이 없어 결국 말라 죽어가야 하는, 반찬이 되어버리는 노동자들의 모습. 떠올리기 싫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 시를 읽으며 지금 조선업계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떠올랐다. 강렬한 태양빛 아래 온몸이 말라가는 물고기처럼.

 

마른 물고기처럼

 

어둠 속에서 너는 잠시만 함께 있자 했다

사랑일지도 모른다, 생각했지만

네 몸이 손에 닿는 순간

그것이 두려움 때문이라는 걸 알았다

너는 다 마른 샘 바닥에 누운 물고기처럼

힘겹게 파닥거리고 있었다, 나는

얼어 죽지 않기 위해 몸을 비벼야 하는 것처럼

너를 적시기 위해 자꾸만 침을 뱉었다

네 비늘이 어둠 속에서 잠시 빛났다

그러나 내 두려움을 네가 알았을 리 없다

밖이 조금씩 밝아오는 것이, 빛이 물처럼

흘러들어 어둠을 적셔버리는 것이 두려웠던 나는

자꾸만 침을 뱉었다, 네 시든 비늘 위에.

 

아주 오랜 뒤에 나는 낡은 밥상 위에 놓여진 마른 황어들을 보았다.

황어를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지만 나는 너를 한눈에 알아보았다.

그 황어는 겨울밤 남대천 상류의 얼음 위에 앉아 잡은 것이라 한다.

그러나 지느러미는 꺾이고 그 빛나던눈도 비늘도 다 시들어버렸다.

낡은 밥상 위에서 겨울 햇살을 받고 있는 마른 황어들은 말이 없다.

 

2003년 제 48 회 현대문학상 수상시집. 현대문학, 2002년 초판 1쇄. 13-14쪽.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