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피하고 싶은 일들이 참 많다. 좋은 일만 나에게 일어났으면 하는데, 어디 인생이 그렇던가.
인생에서 안 좋은 일, 정말 겪고 싶지 않은 일들이 어쩔 수 없이 내게 다가올 때 그 일이 나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주었던가.
고통을 받아들이려는 마음을 먹어도 고통은 나를 더욱 지치게 하고 힘들게 한다. 나에게 커다란 상처를 남기고 만다.
그런 고통, 겪지 않으면 좋으련만 세상이 어디 내 뜻대로만 되던가. 내 뜻대로만 되면 세상이 과연 살 만할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변화가 없는 삶, 예측이 늘 가능한 삶이란 너무도 단조로워 인생의 재미를 잃게 할 것이다.
그래서 인생은 살 만하다. 도대체 예측할 수 없으므로. 오늘의 행복이 지속되지도 않고, 그렇다고 오늘의 불행이 지속되지도 않으니...
인생은 어떻게 하든 내게 다가오는데... 불현듯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이 생각났다. 참 쉽게 하는 말이지만 참으로 실천하기 어려운 말.
그런 말을 이 시에서 느꼈다. 이수명의 '나무는 도끼를 삼켰다'
나무는 도끼를 삼켰다
자신을 찍으려는 도끼가 왔을 때
나무는 도끼를 삼켰다.
도끼로부터 도망가다가 도끼를 삼켰다.
폭풍우 몰아치던 밤
나무는 번개를 삼켰다.
깊은 잠에서 깨어났을 때 더 깊이 찔리는 번개를 삼켰다.
이수명, 붉은 담장의 커브, 민음사. 2001년. 41쪽.
나무 역시 도망가고 싶었으리라. 도끼가 다가오는데, 그 도끼를 순순히 받아들일 나무가 어디 있겠는가. 변개가 치는데 그 번개를 온몸으로 맞고 싶은 나무가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어쩔 수가 없다. 나무는 도망쳐도 도끼를 벗어날 수가 없다. 번개를 피할 수가 없다. 그럴 때 나무가 할 수 있는 일. 그것은 도끼를 삼키는 일. 번개를 삼키는 일.
그래서 새로운 존재로 태어나는 일.
이 시를 읽으며 '벽조목'이 생각났다. 번개 맞은 대추나무. 그래서 잡귀를 물리친다는 나무. 그렇다. 도끼를 삼키고 번개를 삼킨 나무는 잡귀 정도는 물리칠 수 있다. 그리고 그는 새로운 나무로 다시 태어난다.
우리 곁에서 늘 우리와 함께 우리를 지켜주는 그런 나무로. 그것이 바로 도끼와 번개를 피할 수 없었던 나무가 한 일 아니겠는가.
피할 수 없으면, 그것을 능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자세. 그래서 그 속에서 다른 존재로 태어나야 하는 존재.
인생이 바로 그러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시. 우리 인생도 이런 나무와 같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한 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