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끄러운 세상에서 조용한 공간을 찾아 그 속에 머물고 싶다면... 현실적으로 생계에 목이 매여 어쩔 수 없을 때, 물질 세계를 떠나지 않고 정신 속에 침잠하고 싶을 때...

 

그럴 때 시 속으로 들어가면 된다. 시 속에서 절대 침묵을 만나고, 절대 고요를 만나고, 그 속에서 부단한 움직임을 만나고, 섬광처럼 지나가는 깨달음을 잡으려 안간힘을 쓰게도 된다.

 

말들이 난무하는 시대, 그 말들이 온통 세상을 까맣게 덮고만 있을 때 고요한 공간 속에 우리들의 말을 놓아둘 필요가 있다.

 

우리들의 귀를 막을 필요가 있다. 귀도 쉬어야 한다. 그런 때 한 편의 시를 읽자. 그리고 그 시 속에 잠겨 고요히 나를 찾는 연습을 하자.

 

고요함이 넘쳐나는 시 한 편... 그냥 조용히 읽으며 그 장면을 상상하며, 그 속에 들어가 있는 자신을 발견해도 좋다.

 

전동균의 시집 "우리처럼 낯선"에 실려 있는 시 중에 '침묵 피정'이다. 그냥 읽으며 나를 이 시 속에 넣어두면 된다. 그러면 된다. 이 시끄러운 세상에.

 

 

  침묵 피정

 

빈 촛대가 놓여 있을 뿐이다

 

서리들이 언 발 비비며 지나가도

어둠이 마른 입술 적시며 쌓여도

홀로 앉아 바닥만 비추고 있을 뿐이다

 

아직도 몸에 더운 피가 흐른다는 게

차라리 슬픔인 밤

 

촛대에 불을 밝히면

삶이 제 것이 아님을 알아버린 자들,

한평생 무덤을 찾아 떠도는 짐승 발자국들이

낡은 성의(聖衣) 자락처럼 펄럭이고

그러면 또 내 몸은 쩍쩍 금이 지는 것이다

 

제 뼈를 깎아 피리를 부는 노인의 입술인지 모른다

폭풍의 하늘로 솟구쳐 사라지는 수리매 날개인지 모른다

 

너무 작아

책 한권 놓으면 꽉 차고

너무 커서 온 세상 울음을 다 쏟아내도 남을

 

앉은뱅이책상 하나

 

전동균, 우리처럼 낯선, 창비. 2014년 초판. 50-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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