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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진짜 친구
설흔 지음 / 단비 / 2015년 10월
평점 :
제목이 "시인의 진짜 친구"이지만 이 책의 내용을 알기 위해서는 연암 박지원이 쓴 "우상전"을 알아야 한다.
아마도 "우상전"을 읽은 사람이라면 (우상전은 한문소설이다. 박지원의 작품이 한문으로 쓰여졌고, 그것을 우리는 한글 번역본으로 읽을 수밖에 없지만.) 이 책이 좀더 가깝게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주인공은 세 명이다. 이언진, 성대중, 이덕무... 그리고 이 세 명의 중심에 있는 인물 박지원.
작품은 고전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형식은 고전이되 내용은 현대적이다. 그러니 박지원의 글쓰기법에 해당하는 '법고 창신'이 이루어진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마치 해설자가 작품을 사람들 앞에 펼쳐놓고 설명해주는 듯한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서술자는 전지전능해서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여러가지 이야기들을 툭툭 던져놓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주인공들의 역할이 미미한 것은 아니다. 세 명의 인물이 거의 동등한 비중으로 나타나는데, 이 중에서도 핵심은 이언진이라고 할 수 있다.
바로 박지원이 쓴 "우상전"의 주인공인 이언진이다. 그는 역관이지만 돈보다는 시에 목숨을 건 사람이다. 그러니 이 책의 제목이 된 "시인의 진짜 친구"는 이언진의 진짜 친구가 누구인가 하는 점을 염두에 두고 읽으면 더 흥미로울 수 있다.
물론 이 세명이 모두 만나서 관계를 맺는 것은 아니다. 이언진을 유일하게 만난 인물은 성대중이다. 그는 서얼 출신이면서도 신중한 행동으로 벼슬살이를 하는, 시를 잘 쓰고는 싶으나 보통 수준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다. 이언진의 시적 재능을 높이 사고, 그의 시를 보관하고 싶어하는 사람이다. 그가 시인의 진짜 친구인가?
이덕무는 우리가 잘아는 실학자다. 책만 읽는 바보 (간서치)로 더 잘 알려진 사람.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주인공으로도 우리에게 잘 알려진 사람. 그는 이언진을 만나진 못한다. 그러나 그의 시적 재능을 알아본다. 시적 재능을 알아보지만 만나지는 못한 사람, 그가 시인의 진짜 친구인가?
여기에 박지원은 이들 셋의 중심에 있다. 사건은 모두 박지원을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다. 이언진은 박지원에게 자신의 시적 재능을 인정받고자 한다. 그러나 박지원의 대답은 냉혹했다. 이게 끝이다. 이 냉혹한 평가 속에는 덕과 재주의 문제가 있다. 바로 '우상전'에 나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결국 이언진은 자신의 작품을 불태우고 젊은 나이에 죽는다. 그는 끝내 박지원을 만나지 못했다. 박지원에게 인정받지도 못했다. 아니, 박지원의 인정을 받았지만, 인정 받았다는 표식을 받지 못했다.
그가 자신의 재능을 더 발휘해서 책으로 냈으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그의 죽음에 박지원의 책임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는 자신의 시적 재능을 알고 있었다. 자신이 시를 잘 쓴다고, 적어도 박지원 만큼 쓴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과 동등한 재주를 지니고 있다는 사람에게 인정을 받고 싶었다. 그렇다면 시인의 진짜 친구는 박지원일까?
답은 나와 있지 않다. 왜냐하면 이 책은 박지원의 "우상전"을 현대판으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우상전"에서 더 벗어날 수 없다.
시인의 진짜 친구는 누구일까? 아니, 어떤 사람이 시인의 진짜 친구일까에 대한 답은 우리 스스로 찾아야 한다.
시인의 진짜 친구는 "지음(知音)"이라는 말처럼 그 사람을 인정해주고, 그 사람과 함께 어울리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 얘기는 거의 동등한 재능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야 함께 공명할 수 있다.
진짜 친구라는 말 때문에 우정을 다룬 책이구나 하고 단정지으면 안 될 책이다. 이 책은. 박지원의 '우상전'을 현대판으로 개작한 작품이라고 보면 더 좋으니, 이 책을 읽고 '우상전'을 읽어도 좋고 (참 짧다. 금방 읽는다), '우상전'을 읽고 이 책을 읽어도 좋다.
그리고 진짜 친구가 되기 위해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도 한 번 생각해 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