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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요일의 기록 - 10년차 카피라이터가 붙잡은 삶의 순간들
김민철 지음 / 북라이프 / 2015년 7월
평점 :
품절
"카피라이터"
광고의 문구를 생산해 내는 사람. 이들에게는 탁월한기억력과 어휘력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책의 저자 역시 탁월한 기억력의 소유자다. 물론 반대의 의미로.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말한다. 우선 자신의 이름. 김민철. 누가 봐도 남자 이름이다. 그런데 여자란다. 이름부터 남들에게 확실히 각인이 될 수가 있다. 여기에 자신이 말하는 탁월한 기억력이라니.. 기대를 했는데...
그 남들보다 탁월한 기억력이라는 것이 글쎄, 남들보다 훨씬 기억을 못하는 능력이라니... 기억력이 형편없는 카피라이터라.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조합이다.
이름이 성별과 어울리지 않듯이, 그의 기억력 역시 광고업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는 그다지 도움이 안되는 능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거꾸로 생각해 보자. 이름이 성과 잘 안 맞는다는 것은 그 이름을 들은 사람에게 자신을 확실하게 각인시켜 줄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사람들은 자신의 예측이나 상식에서 벗어난 것에 흥미를 느끼고 또 더 잘 기억하니 말이다.
마찬가지다. 형편없는 기억력. 이것은 기존의 것을 잘 잊는다는 것이다. 기존의 것을 자신의 것으로 가지고 있지 않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늘 새로울 수 있다는 얘기. 당연히 본인에게는 새로운 것이 남들에게는 이미 식상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본인이 늘 새로움을 느끼면서 살 수 있다는 것은 광고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에게 신선한 자극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얘기가 된다.
또한 자신의 기억력이 탁월하게 좋지 않다는 인식을 하게 되니, 그를 보완할 수 있는 노력을 하게 된다. 그 노력의 결실이 바로 이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기억을 잘 못하지만 읽기는 좋아한다. 책을 무지 읽는다. 그리고 그 책의 내용을 깡그리 잊어버린다. 잃어버린다. 그럼에도 읽는다. 읽고 읽고 잊고 잊고 잃고...
기억하지 못하는 책을 왜 읽냐고? 두뇌는 기억하지 못할지 몰라도 몸은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 책들이 몸에 남아 삶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삶 자체가 책과 함께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읽는다. 또 읽는다.
읽는 행위에 이어 듣는다는 행위, 어머니가 피아노를 가르치는 분이었다는 것 외에는 음악에도 본인은 재주가 없다고 하는데... 그것은 연주에 재능이 없는 것이지 듣기에 재주가 없다는 말이 아니다.
그래서 음악은 지은이의 삶에 밀접하게 다가온다. 집중할 때 듣는 음악,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하루를 시작하며 듣는 음악, 시끄러운 상황에서 듣는 음악 등
상황에 맞는 음악을 듣고 또 음악 연주회에 가서 감동을 받고 외국 여행에서 즉흥적으로 이루어지는 연주들에 마음을 주기도 하고.
이렇게 듣는 귀를 가진 사람이 물론 곡을 기억하지는 못해도 몸에 저장해 놓은 그 음악들은 언제가 필요할 때 튀어나오기 마련.
여기에 더해서 보기까지, 특히 카메라라는 또 하나의 눈을 통해 보는 법을 즐기는 사람. 남들이 좋아하는 장면이 아니라 벽들, 그리고 늙어가는 사람들을 사진에 담는 사람.
자신의 삶을 카메라를 통해 보는 활동을 하는 사람. 이런 사람은 무엇을 꼭 머리에 담아둘 필요는 없다.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그의 활동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 위에 쓰기가 더해진다. 이렇게 쓰기가 이루어진 결과 이런 책도 나온다.
책 내용이 광고인을 위한 것도 아니고, 청년들에게 위로를 건네주는 책도 아니고, 그냥 자신의 삶을 담담하게 기록한 책이다.
그냥 쓴 책. 나는 이렇게 살고 있다고 쓴 책. 이 책을 통해서 나는 다른 사람, 그냥 자신의 삶을 즐기면서 사는 사람을 만났다. 그리고 그런 삶이 상당히 매력적임도 느끼게 됐고.
기억에 의존하지 않아도 자신이 한 행동 하나하나, 읽은 책 하나하나, 들은 음악 하나하나, 본 장면들 하나하나, 꾸준히 썼던 글들이 모두 자신의 삶을 이루어가는 요소다.
그런 요소들이 현재의 즐거움에 함께 할 때 삶은 풍요로워진다. 그런 풍요로움을 간접적으로 끽할 수 있는 책이 바로 이 책이다.
그냥 다른 사람의 즐거운 삶을 엿보길 바란다면 이 책을 들고 읽어보길 바란다. 그냥 읽으면 된다. 굳이 기억하려고 하지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