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詩集
나태주 글.그림 / 푸른길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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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딘 온라인 중고샵에서 구입한 책. 가끔 알라딘 온라인 중고샵을 기웃거린다. 내가 원하는 책이 나와 있기도 하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책이 나와 있기도 한다.

 

이 책을 산 이유는 단순하다. 나태주의 시를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주 짧지만 마음에 콕 와 박히는 시, '풀꽃'

 

자세히 보아야 / 예쁘다 //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 너도 그렇다.  (146쪽)

 

3연 5행의 아주 짧막한 시지만, 안도현의 '너에게 묻는다'와 더불어 많이 인용되는 시다. 무엇하나를 사랑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알려주고 있는 시.

 

그런데 이 시집에는 '이야기가 있는'이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이야기가 있는, 즉 시에 이야기가 달려 있다는 것이다.

 

이야기과 시를 함께 읽을 수 있겠다 싶어 샀는데, 이야기는 나태주 시인이 그 시를 쓸 때 든 감정, 또는 상황에 대해서 알려주고 있는 글이다. 그래서 그 시를 쓴 시인의 마음을 더 잘 알 수 있고, 시에 대해서 친근감을 느낄 수도 있다.

 

시는 멀리 외계에서 온 것이 아닌, 또 시인이라고 하는 전문가들만이 쓸 수 있는 것이 아닌, 누구나 우리 주변에서 일어난 일을 가지고 시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 시집이다.

 

게다가 이 시집은 어린이들이 읽을 수 있는 시들을 골라 엮었다. 물론 어린들이 읽을 수 있다고 해서 어른들이 읽으면 안된다는 얘기는 아니다. 어른과 어린이들이 함께 읽으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시들을 엮었다고 하면 된다.

 

어떻게 이야기가 있는 시집에 만들어졌는지... 한 편의 시를 살펴보면 된다.

 

 

사진이 좀 흐리게 나왔는데, 알아보는 데는 지장이 없을 것이다. 무엇을 찍은 사진인가? 이 사진에서 어떤 이야기를 찾아낼 수 있는가?

 

시인은 이 사진을 보고 시를 떠올린 것이 아니라 시의 내용에 맞는 장면을 사진으로 찍었다고 보면 되지만, 이 다리 사진에서 무엇을 찾아내느냐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우선 시인은 아버지를 생각한다. 한 때 거인으로 다가왔던 아버지.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자꾸만 자그마해 지는 아버지. 그 아버지를 사진의 밑에 있는 다리로 표현한다. 그리고 자꾸만 커져가는 아들을 사진의 위에 있는 다리로 표현하고.

 

아버지의 존재를 '다리'로 떠올린 다음에는 그를 시로 표현한다. 이 과정을 그의 글을 그대로 따라가 보자.

 

'엄한 아버지에 인자한 어머니'란 말이 있었다. 그만큼 아버지는 집 안에서나 밖에서나 힘 있고 집안 식구들에게 무서운 사람이었다. 그러나 요즘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다. 아버지들의 어깨에서 점점 힘이 빠지고 아버지들이 점점 우울해져 간다. 더구나 아이들이 하루가 다르게 자라면서 아버지들은 더욱 마음이 좁아지고 자신감을 잃어 가고 있다. 그런 오늘의 아버지를 사람이나 차들이 건너는 '다리'로 표현해 보았다.  101쪽

 

 

 

다리

 

 

살기가 좋아지면서

길이 새로 뚫리고

다리가 새로 놓여

헌칠하게 뻗은 새 길과

새 다리 옆에

쪼그맣게 쭈그리고 앉아

쓸모없게 되어 버린

옛날의 다리

 

 

아이가 어렸을 때는 곧잘

호령도 하고 큰소리도 쳤는데

아이가 커 가면서부터

말수를 줄여 간 아버지

훌쩍 자라 버린 아이들 옆에

쪼그맣게 마주 앉아

할 말을 잃어버린

오늘의 아버지.

 

나태주. 이야기가 있는 시집. 푸른길. 2013년 1판 6쇄. 100쪽. 

 

이렇게 시에 이야기가 있다. 그 이야기가 시로 표현된다. 우리 주변에 있는 것들이 하나하나 다 시가 될 수 있다.

 

그것은 우리가 '자세히 보아야' 하고 '오래 보아야' 한다. 그래야만 '풀꽃'처럼 '너'가 된다.

 

이 시집에서 시인은 그렇게 우리 주변의 모든 것들이 이야기가 되고 시가 됨을 보여주고 있다. 읽으면 그 자체로 마음이 따스해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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