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어지러울 때 시가 더욱 필요하다. 시가 필요없는 시대는 없다. 시는 평안한 시대에는 우리의 마음에 즐거움을, 어지러운 시대에는 우리의 마음에 위안을 주기 때문이다. 아니 그래야 한다.
그래서 그렇게 엄혹했던, 암흑기라 하던 일제시대에도 시를 쓰지 않았던가. 숨어서 쓰든, 나서서 쓰든, 시는 언제나 우리와 함께 했다. 그런 시들은 바로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만들어 주는 역할을 했다.
정대구의 시집을 헌책방에서 구했다. 시집인 줄 알고 샀는데, 자세히 보니 시선집이다. 여러 시집에 실려 있던 시를 모아 펴낸 책이다. 그렇다면 이 시집이 나오기 전까지 정대구가 쓴 시들 가운데 한 시집에 모아놓으면 좋다고 생각한 시들을 편집했다고 보면 된다.
오히려 한 시인의 핵심적인 시를 한 권의 시집에서 모두 볼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천천히 읽기 시작.
시가 어렵지 않다. 어렵지 않으니 우선 마음이 편안해 진다. 왜 그럴까? 시집의 첫머리에 시인의 말이 있다. '쓰기 위해 사느냐 살기 위해 쓰느냐'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글. 그 글의 말미에 이런 말이 나온다.
'나는 글(시) 쓰기를 통해서 나의 존재, 나의 삶, 나의 가치를 확인하고 보다 참된 글쓰기를 위해서라도 나의 삶을 아름답게 영위하고자 함이 나의 바람이다.' (시인의 말에서)
그렇다. 그는 바로 잘 살기 위해 시를 쓴다. 자기의 삶을 아름답게 영위하고자 시를 쓴다고 하는데, 그것이 바로 참된 글쓰기라고 한다.
이 말에 의하면 시는 우리의 삶도 아름답게 해준다. 해주어야 한다. 그렇다면 시는 쓸데없이 어려워서는 안된다. 시는 쉽게 우리의 마음에 다가와야 한다. 그런 다짐을 그는 '철산리에 가서'란 시에서 하고 있다.
철산리에 가서
내 누님을 생각하면
나는 맥주나 마셔 가며
어려운 시를 쓸 수가 없다.
과수댁이 된 누님
삼양동 막바지에서 주렁주렁
7남매 매달고 살아 온 길은
말도 아니고 길도 아니다.
지금은 개봉동 너머쪽
서울이 외면하는
경기도 시흥군 서면 철산리
산 221번지에서,
어려운 시를 쓰고 있는 나를
원망하고 있는 우리 누님
날아간 지붕을 고치고 있는
우리 누님
(나는 여기서 막걸리 마시고 별을 보며 시를 썼다.)
그러나 이것은 시의 방법이 아니다.
어렵게 사는 누님을 생각하면
정말 나는 시를
쉽게만 쓸 수도 없다.
정대구 시선, 쌀을 씻으며, 문학세계사. 1991년. 31쪽.
'어렵게 사는 누님을 생각하면 / 정말 나는 시를 / 쉽게만 쓸 수도 없다.'는 시인의 말은 시를 아무렇게나 쓸 수 없다는 말, 삶의 진실이 드러나지 않은 시를 쓸 수 없다는 말로 들린다. 시는 진실한 삶과 관련되어야만 한다는 말로 읽히는데...
여기에 더해 시가 쓸데없이 현학적이면 안된다는, 시인은 그런 현학적인 시는 쓰지 않겠다는 말로도 읽힌다.
다른 한 편으로는 윤동주의 '쉽게 쓰여진 시'가 연상되기도 하는데... 남들은 다들 살기 어렵다는데 왜 시가 쉽게 쓰여질까를 고민하던 그.
삶의 진실에 다가가는 시를 쓰려던 윤동주이기에 이런 고민이 시로 나타났으리라. 마찬가지로 정대구의 이 시도 그렇다. 시대가 변해도 삶의 진실에 다가가려는 노력을 시인들은 해야 한다. 그 길은 쉽지 않다. 마치 누님이 살아온 길처럼.
그럼에도 그런 시를 써야 한다. 그러니 시가 쉽게만 쓰여질 수가 없다. 자신의 마음 속에서 녹아 나와야 하기 때문에.
꼭 시만 그럴까? 우리들 삶이 모두 이렇지 않을까? 이 시를 정치에 대입하면 어떨까? 정말 쉽게 정치를 하면 안된다. 힘들게, 너무도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많기에. 꼭 정치만이 아니더라도 이 시는 여러 분야에 적용될 수가 있다.
모든 일, 진실에 다가가려는 노력, 그런 일을 하지 않고, 세상을 쉽게만 살려고 해서는 안된다. 시인이 시를 쉽게만 쓰지 못하듯이. 그렇다고 어렵게, 남들이 알지 못하고 자신만 알게 써서도 안 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