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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덟, 너의 존재감 ㅣ 르네상스 청소년 소설
박수현 지음 / 르네상스 / 2011년 11월
평점 :
청소년 소설을 읽으면 마음이 우울할 때가 많아 잘 읽지 않는데, 도대체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아갈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도 '완득이' 같은 경우는 짧은 문체로 빠르게 읽어가고, 무거운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어둡지 않게 읽을 수 있어서 좋았는데...
이번 소설도 마찬가지다. 내용은 어두울 수 있는데, 읽다 보면 치유가 되는 느낌을 받는다. 소설을 읽으며 치유를 받는 것, 굳이 소설치료라는 분야를 언급하지 않아도 주인공들의 삶에 공감하다 보면 어느새 자신의 삶을 성찰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런 것이 바로 소설의 힘인데... 그래서 청소년 소설은 주제가 무겁더라도 내용 전개까지 무겁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적어도 소설을 읽으며 더 칙칙한 세계로 들어가지는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 소설은 고2 여학생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세 명의 주인공이 나온다. 그리고 세 명의 관점에서 소설이 각자 진행된다. 물론 세 명은 다 연결이 되고, 마지막에는 서로를 이해하고 한 자리에 모이게 된다.
고2면 우선 입시전쟁에 찌들어 있는 나이다. 학교라는 공간, 솔직히 벗어나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다니는 그 공간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은 공부를 아주 잘하거나, 사고를 치거나 둘 중 하나다.
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공부와는 거리가 멀다. 또 가정환경이 화목하지도 않다. 저마다의 고민을 안고 살아간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낼까?
첫번째 주인공인 이순정은 아빠는 도망가고, 할머니 손에서 자라다 엄마와 지내게 된 아이다. 엄마와 아빠의 외모를 닮아 예쁘기는 하지만 지지리도 궁상인 엄마 곁에서 도무지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한다. 그냥 조용히 남의 간섭 받지 않고 지내길 바란다.
다만 할머니에 대한 무한한 애정만은 간직하고 있는 아이. 이 아이가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고 표현하고, 들여다보는데는 담임인 쿨샘의 역할이 크다. 다른 주인공도 마찬가지지만.
마음일기라는 것을 통해 쿨샘은 이들에게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그리고 마음챙김 활동을 통해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는 계기를 마련해주기도 하고.
두번째 주인공은 김예리다. 그림자라고 나온다. 그냥 아무에게도 존재감이 없이 지내는 아이. 집에서는 공부를 잘하지 못해 무시당하고, 학교에서는 쥐죽은 듯이 지내, 누구도 그 아이의 이름을 잘 알지 못하는.
자기 생각에 빠져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는 아이. 소위 멍 때리는 아이다. 멍 때린다는 것, 생각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생각이 너무 많아 자신의 생각을 자신도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말이다. 적어도 이 소설의 쿨샘에 의하면.
이 아이 역시 마음 일기를 통해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된다. 그림자에서 실체가 있는 인간으로 돌아고기 시작하는 것.
세번째 주인공은 강이지다. 자신의 약점을 숨기기 위해 일부러 활달한 척 하는 아이. 그러나 가정에서 매번 벌어지는 부모의 싸움에 자신을 잃어가는 아이다. 남 앞에서 큰소리치지 못하고 하얗게 질리는 아이.
그럼에도 쿨샘을 만나고 나서 꿈을 이루려는 마음을 먹는다. 이 아이가 이순정과 친해지고 이들은 보충수업에 관한 학생들의 의견을 조직하는 활동을 한다.
학교에서 학생이 어떤 활동을 한다는 것, 그것은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일이다. 그냥 죽어지내는 것이 아니라,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 이제 이들은 그림자가 아니라 당당한 자기 삶의 주체가 된다.
무엇으로? 바로 마음 일기를 통해서. 즉, 마음 챙김을 통해서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된 아이들. 이 아이들은 자신의 마음에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거리를 두고 들여다보며 생활할 수 있께 된 것이다.
두려운 마음을 들여다보고, 자신이 지금 두려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그 자리에서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하는 데까지 나아간 것.
그것이 바로 마음 일기의 효과다. 마음 챙김의 효과다. 그런 과정을 세 아이를 통해서 소설은 잘 보여주고 있다.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고, 알려고 하지도 않고, 또 지지리도 안 좋은 환경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아이들에게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게 해준 쿨샘... 그런 교사...
그것은 빛이다. 그림자가 아닌 자신의 실체를 인식하게 해주는 교사니. 하여 네 명이 어우러지면서 한 편의 소설을 전개해나가는데...
무거운 주제고 참으로 어둡고 막막한 환경이지만 읽어가면서 서서히 비추어드는 빛을 느끼고, 볕을 느낄 수 있는 소설이다. 그래서 마음이 따스해진다.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게 해주는 소설이기도 하다. 청소년들이 그냥 읽었으면 좋을 소설이다. 오랜만에 마음이 따뜻해지는 소설을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