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외무상이 와서 우리나라 외교부와 협상을 했다. 협상 내용을 발표했는데, 군 위안부에 관한 문제에 대한 협상이었다. 협상일까, 아니면 일방적인 타협일까?

 

협상이란 결과가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것이 있어야 하는데, 일본은 연일 이 협상은 불가역적이라고, 이제는 되돌릴 수 없다고 하는데, 그들이 이렇게 되돌릴 수 없음을 강조하는 이유는, 자신들에게는 상당한 이익이 있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 아닐까 하는데...

 

그런데, 우리는 일본의 공식사과를 받고 배상금도 받는다고 하지만, 사과는 일본 총리가 아닌 사람이 했고, 배상금은 당연한 것이고, 그것이 무슨 생색내기가 아닐진대...

 

여기에 일본은 일본대사관 앞에 있는 소녀상을 철거하라고 하는데,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했다면, 그 잘못을 되새겨주고 기억시켜 주는 소녀상을 오히려 자신들이 더 잘 보호해야 하는 것 아닌지.

 

이런 협상이 잘되었다고 만족스럽게 일본의 총리와 전화통화를 하는 우리나라 대통령의 모습이 방송에 나왔는데...

 

그 장면이 이영진의 시집 '숲은 어린 짐승들을 기른다'에 실린 이 시를 읽는 순간 다시 떠올랐다. 이 장면을 무어라고 해야 하지?

 

시인은 '바로 그날 이후의 역사를 / 나는 무엇이라 이름해야 할지 아직 떠오르지 않는다'고 했는데... 시를 보자. 시는 이 내용과는 거리가 있지만, 시에 나오는 장면은 그렇게 멀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코미디를 생각하며

 

국회의원이 된 선배여, 당신은 엄연히

이 나라 헌정사를 이끄는 당당한 의원님이고

그것은 어김없는 현실이다.

추호도 잘못되지 않았다. 그러나 선배여

그날 당신은 밀려드는 전차와

M16에 착검한 군대 앞에서

총을 든 채 어둠속에서 영원을 살리라 했다.

그날 당신은 위대했고 광휘로웠다.

당신으로 하여 역사는 다시 한번

빛나는 날개를 폈다.

선배여, 빛나는 역사의 날개를 펼쳐들었던

당신을 죽음으로 몰아넣던 학살자들과 함께

한단상에서

의정을 이끌어가는 동료 의원이다.

TV에 당신과 학살자들이 나란히

얼굴을 비치던 날, 바로 그날 이후의 역사를

나는 무엇이라 이름해야 할지 아직 떠오르지 않는다.

 

이영진, 숲은 어린 짐승들을 기른다. 창작과비평사. 1995년 초판 2쇄. 91쪽.

 

벌써 20년 전에 발표된 시인데... 그 시에서 비판하고 있는 것은 민주화 운동을 하던 사람과 그 운동을 탄압하던 사람이 한 자리에 모여 나를 위한답시고 머리를 맞대고 있는 광경일텐데...

 

너를 개혁하겠다고 여당에 들어갔던 사람, 야당에 들어가 여당을 견제하겠다는 사람이 모두 머리를 맞대고 무엇을 했는지...

 

친일청산, 민주화 쟁취 등을 외쳤던 사람들이 지금 누구와 함께 있지? 누구의 말을 듣고 있지? 이런 역사를 무어라 이름해야 하지? 시인의 마지막 외침이 마음에 와닿는 이유는, 아직도 우리가 이 시에서 비판하고 있는 모습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한 번 그런 역사를 우리 역사에 추가해 놓고 있기도 하고... 역사가 반복되면 안되는데... 그동안 우리가 역사를 통해 배운 것이 이다지도 없단 말인가?

 

예전 한일협정을 굴욕적이라고 했는데... 역사 교과서가 국정화되더니, 군 위안부 문제도 이렇게 넘어가고 마는지...

 

똑바로 기록해 놓아야 한다. 지금 어떻게 할 수 없다면 미래 세대를 위해서 기록이라도 정확하게, 그들이 잊지 않고  볼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렇게라도 해야 한다. 그래야 이 코미디 같은 역사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