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씨의 입문
황정은 지음 / 창비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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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는 이유가 무엇일까? 아마도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이유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은데... 어떤 사람은 그냥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삶을 엿보기 위해서,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삶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 또 어떤 사람들은 등장인물에 동화되는 자신의 모습이 좋아서 등등 다양할 것이다.

 

예전에는 리얼리즘이라고 하여 현실적인 인간이 현실적인 공간에서 현실적인 문제와 부딪히면서 살아가는 모습을 서술한 소설이 많았다. 그렇게 해서 소설은 사람들의 삶 속으로 들어왔고,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 소설은 리얼리즘을 넘어서 있다. 아주 다양한 형식으로 다양한 내용으로 전개되고 있다. 그것이 현대소설의 묘미이기도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소설이 사람들에게서 멀어지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이 소설집도 마찬가지다. 전체적으로 보면 현실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전혀 현실적이지 않은 이야기들이 있다. 그냥 읽는 사람을 저만치 떨어지게 만들어 놓고, 지켜보게만 하는 소설. '대니 드비토, 낙하하다, 옹기전, 묘씨생'

 

이 네 단편에는 유령이 나오고, 옹기가 말을 하고 - 말을 한다고 생각하고 -, 고양이가 서술자로 등장해 사람들의 모습을 서술하고 있다. 현실이라기 보다는 우리의 현실을 표현하고자 하는 형식상 기법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렇다고 꼭 황당하다고만은 할 수 없다. 우리네 현실이, 그것도 비루한 현실이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짧은 문장으로 글이 긴박하게 넘어가고 있어서 읽기에도 편하다.

 

야행, 양산 펴기, 디디의 우산, 뼈 도둑, 파씨의 입문은 낮은 곳에 사는 사람들이 이야기가 절실하게 다가오는 소설들인데... 그렇다고 그런 낮은 곳 사람들의 삶에 비참함이 묻어나지는 않는다. 어렵지만 무언가 그 자리에서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담하게 표현해내고 있다.

 

이 중에 가장 긍정적인 소설이 (긍정적이란 표현이 좀 우습기는 하다. 일하다 직업병을 얻는 도도와 언제 해고될지 모를 정도로 근무여건이 약화된 디디, 그리고 그들이 친구들도 어려운 삶을 살고 있기는 마찬가지니) '디디의 우산'이다.

 

우산이 무엇인가? 비가 올 때 비에 젖지 않도록 보호해주는 존재 아니던가. 도도에게 빌린 우산을 잃어버리고 그것을 마음에 담아 놓고 있던 디디가 우산으로 인해 도도와 함께 사는데... 이렇게 없는 사람들이 함께 의지해 살아가는데, 이들에게 많은 비들이 내린다. 이 비들을 막아줄 우산이 필요한데...

 

작품의 끝에서 디디는 자신의 집에 와 자고 있는 친구들이 돌아갈 때 쓸 우산이 있나를 찾는다. 이만큼 아무리 어려워도 어려운 상황을 막을 무언가를 찾는 모습에서 이 소설을 읽으며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럼 따뜻함, 이것은 어쩌면 예전에 나온 리얼리즘 소설에 행복한 결말이 더해진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데 (물론 현실은 이렇게 행복한 결말이 되지 않을 것이다. 디디는 해고될 가능성이 많고, 도도는 직업병으로 인해 평생 고생을 하게 될 것이고, 이들의 생활은 여기서 더 나아지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에게 마지막까지 남은 것이 희망이라는 생각을 하게 해준 소설이다.

 

아홉 편이 소설이 서로 맞물리는 지점도 있지만 독자적인 소설인데... 다양한 형식으로 우리 현실을 담아내고 있단 생각이 든다. 그것도 화려한 번화가의 삶이 아니라 밀려나고 쫓겨난 삶들을 보여주고 있다고 살 수 있으니...

 

참으로 힘든 삶임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집에서는 불안과 절망보다는 긍정과 희망이 느껴진다. 그것이 무엇일까? 이 소설집에서 어떤 요소가 그렇게 느껴지게 했을까는 읽는 사람이 찾아야 할 몫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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