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독한 기다림 위에 있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331
김윤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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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에 대한 단상. 이 시집에는 울음과 붉은색이 많이 나온다. 나는 이것을 물과 불로 바꾸어 읽었다.

 

물, 우리를 구성하고 있는 요소. 우리의 생명을 유지해주는 요소. 이런 물이 불을 만나면 서서히 증발해 간다. 뜨겁게 뜨겁게 오랜 시간을 거쳐 물은 사라지고... 그리고 남는 것은 바로 그리움.

 

무엇에 대한 그리움일까? 그것은 우리가 생각하기 나름이다. 거대한 호수가 증발해 소금호수가 되는 시간. 너무도 긴 시간. 그런 시간의 그리움.

 

수만년의 시간이 흐른 뒤 만들어진 소금. 결정체. 그리움은 그렇게 우리를 힘겹게 한다.

 

하지만 결국 수정으로 우리에게 돌아온다. 소금없이는 우리 삶도 없을 거고, 물이 증발하고 증발하여 소금 결정체가 되듯이 우리의 그리움도 그리움 위에 쌓이고 쌓여 어떤 결정을 만들어낼 것이다.

 

많이 생각해 보자. 이 시.

 

혹독한 기다림 위에 있다

 

소금밭으로 변한 호수 위에 내가 섰다

수심 깊이 숨어 있던 그리움들의

부활, 너와 나를 종단하던 시간이

순장의 수수만년을 기다려

수정의 모습으로 솟아오르는 현장

흰 소금의 결정으로 부활한 시간 속에

네가 없다 소멸 위에 꽃 핀

참혹한 시간이 있을 뿐

대지는 마지막 한 방울의

물이 스며들기를 기다려

네게로 가는 길을 냈을 거다

시간이 작은 수정의 모습으로 부활하기를

기다렸던 거다 기다림이란 저런 거다

죽은 시간 위에 소금의 결정으로 부활하는 사랑

나는 지금 그 혹독한 기다림 위에 있다

 

김윤배. 혹독한 기다림 위에 있다. 문학과지성사. 2007년.초판 2쇄. 51쪽.

 

이 시를 읽으며 노란 리본이 생각이 났다. 누군가는 생각도 하기 싫은, 그래서 지지부진하게 일을 처리하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벌써 한 해가 저물어 간다. 무엇 하나 해결된 것이 없이, 무한한 기다림으로 치닫게 만들고 있는 지금. 이 시, 정말 우리의 기다림은 설렘이 아니라, 만남에 대한 기대가 아니라, 혹시 오지 않을까 하는 애탐으로 변해가고 있지는 않은지.

 

노란 희망으로 기다리고 있던 리본, 그 리본이 까맣게 타들어가 하얗게 변해버리기 전에, 아니, 그런 일이 없도록 이 시에서처럼 '작은 수정의 모습으로 부활' 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우리들에게 기다림은 정말로 혹독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 혹독함을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이겨내야 하겠지. 이 시,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한 해가 저물어 가는 이 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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