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열리는 벼룩시장. 운이 좋으면 마음에 담아 놓았던 물건을 만나기도 한다. 물론 가격 흥정은 기본이지만.

 

갖가지 물건들 속에서 책을 주욱 펼쳐놓은 곳도 있다. 헌책들이 다른 사람들의 손길을 기다리며 길 가에 나란히 나란히 누워 있다.

 

스윽 눈길을 주는데, 이번엔 시집들이 제법 많이 나와 있다. 아마도 어느 집에서 또는 도서관에서 장서를 정리했나 보다.

 

이 시집, 저 시집 만지작거리며 내 손으로 들어올 시집이 어느 것인가 고르고 있는데, 주인이 '문익환 목사님 시집도 있어요' 하면서 시집 한 권을 가져다 준다.

 

문익환 목사. 윤동주의 친구로도 알고 있지만, 엄혹했던 유신시대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의 상징과도 같았던 분 아니던가.

 

윤동주의 시처럼 부끄럼없이 살기 위해 노력했던 분. 그 분이 말하는 순수는 독재가 물러가는 것, 절대적인 자유를 위해 자신의 자유를 구속당해도 감내했던 것.

 

이 시집은 '백범사상연구소'에서 나왔고, 대부분의 시가 문익환 목사가 감옥에 있을 때 쓴 시라고 한다.

 

본인은 '전연 다듬을 수 없는 환경에서 얻은 것들이어서 미완성품이지만 나의 넋의 진솔한 소리 같아서 가급적이면 손을 보지 않고 그대로 두었습니다'(88쪽)라고 했다.

 

그렇다. 이 시집에서는 아름다운 말이나 어떤 완성된 형식을 찾을 필요가 없다. 그 시대에 문익환 목사의 고민이, 삶이 그대로 드러나 있기에 그것을 느끼면 된다.

 

이제는 고인이 되셨지만, 그가 이루려고 했던 그런 순수의 시대가 돌아오지는 않았다. 아마, 지금 문 목사가 생존해 있었더라면, 그는 또다시 감옥에 가는, 자신의 자유를 더 큰 자유를 위해서 희생하는 그런 행동을 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 시집에 실린 이 시처럼. 지금은 밤...

 

  마지막 시

 

나는 죽는다

나는 이 겨레의 허기진 역사에 묻혀야 한다

두 동강 난 이 땅에 묻히기 전에

나의 스승은 죽어서산다고 그러셨지

아-

그 말만 생각하자

그 말만 믿자 그리고

동주와 같이 별을 노래하면서

이 밤에도

죽음을 살자

 

문익환, 꿈을 비는 마음, 백범사상연구소. 1983년 삼판. 42쪽.

 

지금 이 상태를 보면 문익환 목사는 어떤 생각을 할까? 어떤 행동을 할까?

 

문익환 목사가 그리워지는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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