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집
전영애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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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집.

 

천천히 읽게 되는 책이다.

 

시인의 집에서 만나는 시인들을 어떻게 가볍게, 빠르게 지나칠 수 있겠는가.

 

책의 분량에 비해서 많은 시인이 나오는 것도 아니다. 총 13명의 시인이 나오는데...

 

게오르크 트라클, 파울 첼만, 잉에보르크 바하만, 프란츠 카프카, 라이너 쿤체, 라이너 마리아 릴케, 하인리히 하이네, 베르톨트 브레히트, 볼프 비어만, 고트프리드 벤, 프리드리히 휠덜린, 프리드리히 쉴러, 요한 볼프강 괴테

 

아는 시인도 있고, 처음 듣는 시인도 있지만 모두 유럽에서 활동한 시인들. 이 중에 카프카는 시인이라고 할 수 없지만, 그의 글 한 편 한 편이 김수영의 말처럼 자신의 온몸으로 쓴 것이기에, 온몸으로 밀고 나간 것이기에 시라고 할 수 있다. 아니, 그는 천상 시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의 거주했던, 또 지나쳐 갔던 집들에서 그들을 만나고, 그들의 문학을 만나고, 그들의 시대를 만나게 되는데...

 

이 글의 저자는 그들에 대해 자신의 감성을 잘 살려 우리에게 소개해 주고 있다. 외국의 시를 우리말로 번역했을 때 그 시의 맛을 느끼기 쉽지 않은데...

 

시의 맛을 느낄 수 있도록 시를 소개하는 과정의 글이 또 한 편의 시가 되고 있다. 이상하게 글을 읽으며 시인의 집에 가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하고 그 시인과 하나가 되고 있단 느낌을 주는 글쓰기다.

 

좋은 글쓰기. 단지 건조하게 시인과 시를 소개하고, 시인의 집에 대한 설명을 하지 않고, 본인이 시인이기도 한 저자가 시적 감수성을 십분 발휘해서 시인의 집에 가는 과정과 시인의 집에서 보고 듣고 느낀 점들이 또 한 편의 시가 된다.

 

그래서 이 책은 '시인의 집'이기도 하지만, '시의 집'일 수도 있다. 한 시인의 발자욱에 포개져 있는 또다른 시인의 발자욱.

 

그런 발자욱의 자취들을 찾아가는 글쓴이. 그리고 글쓴이의 발자취를 좇아 또다시 시인들의 흔적을 우리 곁에 불러오는 이 책을 읽는 우리들.

 

아주 천천히... 시인의 집에 도착한 양, 그 시인을 생각하고, 그 시인의 생애를 생각하고, 그 시인이 살았던 시대를 생각하고, 그 시인의 시를 음미한다.

 

이것이 바로 이 책을 읽는 방법이리라. 그렇게 이제는 우리에게 낯익은 외국의 시인들이 우리 곁으로 다가온다. 그 점만으로 이 책은 읽을 가치가 있다,

 

무엇보다도 이렇게 시인들의 흔적을 남겨둔 그들의 문화적 감성이 부럽다. 우리는 우리에게 자취를 남긴 시인들의 흔적을 얼마나 남기고 있는가.

 

최근에는 남기려는 노력을 하고 있지만, 이미 사라져 버린 시인들의 발자욱이 얼마나 많은지.

 

내가 걷는 이 길을 이미 우리의 시인들도 걸었다는 사실, 그 발자욱은 어느 한 시인의 것이 아니라, 여러 시인들이 밟고 밟고 또 밟은 그런 발자욱이라는 사실. 우리 역시 그 발자욱 위에 또 하나의 발자욱을 놓을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

 

어쩌면 이 책은 외국 시인에 대한 소개가 아니라 우리들 가슴 속에 들어온 시인들의 발자취를 한 번 찾아보게 하는 역할을 하는 책인지도 모른다.

 

여러 발자욱들이 중첩되어 한 장소에 존재할 때, 그것이 바로 백범 김구가 꿈꾸던 문화민족이 아니겠는가.

 

그런 생각을 하게 해준 책. 천천히, 아주 느리게, 마치 이국의 도시를 천천히 걸으며 주변을 하나하나 살피며 다니듯, 그렇게 읽은 책. 또 그렇게 읽어야 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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