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호 특집은 "부채와 인권"이다. 제목만 보고 영화 두 편이 떠올랐다.

 

"똥파리"와 "피에타"

 

주인공이 부채를 받아내는 청부업자인 영화. 이들에게 채무자란 인권이 없는, 단지 남의 돈을 갚지 않는 존재일 뿐.

 

그들의 개인사정이나 인간으로서의 존엄은 안중에도 없다. 그런데 그들의 눈에 어느 순간 사람이 들어온다. 사람이 들어온다는 것은 인권의 개념이 알게 모르게 생긴다는 것이다.

 

그냥 빚쟁이일 뿐이었는데... 자기랑 같은 사람이 된다. 동등하다. 이게 인권이다. 이런 인권이 청부업자의 마음 속으로 들어오는 순간... 그는 더이상 청부업자가 될 수 없다.

 

청부업은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을 때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순간, 그들은 더이상 암흑의 세계에서, 반인권의 세계에서 살아갈 수가 없다. 두 영화가 주인공들의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이유다.

 

녹색평론에서 "부채와 인권"이라는 제목을 선택한 것은 지금 우리 시대를 너무도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정부는 "노동개혁"이라고 나이 든 사람의 임금을 깎아서 젊은이들의 임금을 보전해 준다고 하는데.. 젊은이들은 정규직에 취업하지 못하고 비정규직으로 취업하고 있는 현실에서는, 이 말은 나이든 사람이든 젊은이든 모두 임금을 깎겠다는 얘기밖에 되지 않고.

 

이 상태에서 취업하기까지 빌렸던 빚들은 생활을 어렵게 하는 장애로 작동하게 되고, 그 부채가 자신의 인권마저 짓밟게 되는 지경에까지 이를 수 있음을, 너무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생태든 환경이든 우선 사람이 살고 봐야 하지 않나?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에서 생태, 환경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녹색평론에서 다뤄줘서 잘 읽었다.

 

지금 우리나라 부채가 얼마인지를 강수돌 교수의 '빚은 어떻게 우리 삶을 짓누르는가'에 잘 나와 있고, 그런 그들을 위해서 최소한의 생활이 가능하게 하는 주빌리 은행을 세운 이야기(사실 주빌리 은행이 뭔지 전혀 몰랐다. 낯선 용어이기 때문에... 그런데, 뒤에 나오는 글에 구약의 '희년' 이야기 중에 요벨(영어 'jubilee'는 히브리어의 음역 - 124쪽)이라는 말에서 주빌리가 구약성경의 '희년'에 해당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를 제윤경의 글 '왜 '주빌리은행'이 태어났는가'를 읽고 두 영화를 떠올렸다.

 

이들에게도 이런 은행이 먼저 생겼다면 영화 속 채무자들이 그렇게 인격을 잃고, 인권을 잃고 심지어는 자신의 목숨마저 잃는 일이 없었을텐데 하는 생각.

 

여기에 벌금을 낼 돈이 없어 억울하게 징역 생활을 하는 사람을 막기 위해 생긴 '장발장 은행' 에 대한 이야기를 오창익의 '새로운 상상,'장발장은행''을 통해서 우리나라 법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있지 않고, 오히려 이들 위에 군림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고.

 

그렇게 국회에 법개정 청원을 했음에도 역시 법률가 출신인 국회의원들이 들은체도 안했던 과정이 이 글 속에 나오는데... 국회의원들이 낮은 곳에 있지 않고 너무도 높은 곳에 있어, 그들에게 추상적인 문구는 존재해도 구체적인 서민들의 삶은 함께 있지 않다는 사실에 환멸감이 들었고.

 

이런 일들이 종교에서도 다루고 있음을, 김회권의 '희년과 민주주의의 회복'이라는 글에서 찾게 되었다. 함께 살아감이 중요함을, 이미 서양의 기독교에서도 갈파하고 있음을, 그것을 실천하는 일을 우리가 미루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고,

 

이 모든 일들을 종합할 수 있는,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바로 '기본소득'을 우리에게 가져오는 일.

 

성남과 서울에서 배당이라는 이름으로 실시하려고 하고 있는데, 이를 '포퓰리즘'이라는 말로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는 '포퓰리즘'이 아니라, 이 땅에 태어나 살고 있는 사람이 누려야 할 기본 권리임을 하승수의 '기본소득이 빈곤문제 해법이다'를 통해서 알 수 있었다.

 

그렇다. 지금 우리에게는 말로만 존재하는 존재하는 '노동개혁'이 아니라, 우리 삶에 현실적으로 도움을 주는 '기본소득'이어야 한다. 이런 기본소득을 통해서 '주빌리은행'이든 '장발장은행'이 우리 사회에서 존재하지 않게 만들어야 한다.

 

이들이 있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가 아직도 개인에게 책임을 지우고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사회에서 책임져야 할 일을 사회에 되돌려주는 일, 그것이 바로 기본소득일테고, 주빌리, 장발장 은행은 이런 기본소득과 더불어 논의되어야 함을 이번 녹색평론 145호를 통해서 생각할 수 있었다.

 

여러모로 생각할 것이 많은 이번 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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