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수선한 세상이다.

 

무언가 정리가 안되고 있는 느낌.

 

경제와 정치와 교육과 예술과 노동과 삶이 서로 따로 놀고 있는 듯한 느낌.

 

소통과는 거리가 먼 사회가 아닌가, 어쩌면 모두들 자기 말만 하고 사는 '입만 있는 것들'만 존재하는 사회는 아닌가.

 

입은 하나요, 귀는 둘인데, 귀를 무시하고, 입만 살리고 있는, 오로지 자신의 입만 살아있다는 듯이 떠들어대는... 그러한 사회.

 

빛과 그림자. 대칭. 양면성. 상호보완성.

 

이렇게 이야기할 수도 있는데... 정치가들에게는 자신들의 '당선'은 있되, 국민은 없고, 경제에서는 '재벌과 성장'은 있되 노동과 분배는 없고, 교육에서는 대학은 있되, 배움은 없는 기형적인 모습, 노동은 정규와 비정규로 나뉘어 여기서도 차별이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니, 예술은 소수만이 향유하고 나머지는 그게 뭐야 하는 식으로 지내고 있는 삶.

 

그러나 빛은 그림자를 동반하고, 그림자 없는 삶은 없다. 빛이 빛으로 빛나는 것은 그림자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정치인이 정치를 하는 것은 국민이 있기 때문이고, 재벌과 성장이 이루어지는 것은 노동과 분배가 있기 때문이고, 대학이 존재하는 이유는 배움이 있기 때문인데... 왜 자신의 존재 이유 중의 하나를 무시하고 있을까?

 

오로지 자신만 보는 사회, 자신의 입만 있는 사회. 이 속에서 그림자에 해당하는 것들은 뒤로 처지고, 무시되고 있어도 있지 않은 존재가 된다.

 

이들이 없으면 안 되는데도.

 

이원의 '불가능한 종이의 역사' 시집을 헌책방에서 구했다. 엄밀하게 말하면 헌책방이라고 하기보단 헌책방이라는 공간조차 지니지 못한 길거리 가판대에서 구했는데...

 

이 시집을 읽으며 '그림자들'이라는 시가 마음에 콕 와 박혔다. 나 역시 그림자를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그런 그림자들의 고충을 짐작조차 하지 못하고 지내지는 않았는지... 내 삶이 비루해도 날 지탱해주고 있었던, 늘 나와 함께 했던 그림자들이 있었음을 잊고 있지는 않았는지 반성하게 한 시다.

 

그림자들

 

바닥은 벽은 죽음의 뒷모습일텐데 그림자들은 등이 얼마나 아플까를 짐작이나 할 수 있겠니

 

무용수들이 허공으로 껑충껑충 뛰어오을 때 홀로 남겨지는 고독으로 오그라드는 그림자들의 힘줄을 짐작이나 할 수 있겠니

 

한 사내가 또는 한 아이가 난간에서 몸을 던질 때 미처 뛰어오르지 못한 그림자의 심정을 짐작이나 할 수 있겠니

 

몸은 허공 너머로 사라졌는데 아직 지상에 남은 그림자는 그 순간 무슨 생각을 할지 짐작이나 할 수 있겠니

 

이원, 불가능한 종이의 역사, 문학과지성사, 2012년. 49쪽.

 

앞에서 화려한 조명을 받는 사람들, 그렇기를 원하는 사람들, 이 시에 나오는 그림자에 대해서 한 번이라도 생각해봐야 한다.

 

그림자 없이 자신들도 존재할 수 없음을... 빛은 그림자를 통해 더 빛날 수 있음을... 따라서 늘 자신의 뒤에는 그림자가 있음을, 나도 잊지 말아야겠다.

 

또 아무리 어려워도 자신을 따르고 받치고 있는 그림자가 있음도 잊지 말아야겠다. 그런 그림자들을 더 힘들게 하지는 말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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