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청에서 직원들이 출동했다. 이유는 민원 때문에 커다랗게 자란 나무를 잘라내야 한다는 거다.

 

단순한 가지치기라고 생각했는데... 몇 시간이 지난 뒤 나무들을 보니, 이런 가지치기가 아니다.

 

이건 학살이다. 나무의 몸통만 남기고 몸통에서 갈라져 나온 줄기들을 모두 잘라냈다.

 

마치 목을 처낸듯이, 목없는 귀신 형상인듯 스산함을 넘어 참혹함을 느끼게 했다.

 

이렇게까지 나무들을 잘라내야 하나? 이게 제대로 된 가지치기인가? 나뭇잎이 떨어져 지저분하다고 인근 주택들과 어린이도서관에서 하도 민원을 내, 구청도 어쩔 수 없단다.

 

나뭇잎... 어느 구청은 사람들이 밟고 다니라고 치우지 않는다던데, 이건 애물단지가 되어, 오직 쓰레기 취급을 받는 동네도 있으니... 자신들이 조금 불편하고 귀찮아져서 치우면 될텐데... 가끔은 낙엽을 밟는 멋도 느낄 법한데...

 

살기가 팍팍하니, 나뭇잎은 나를 힘들게 하는 대상에 불과하고, 그러니 그런 나뭇잎을 제공하는 나무는 잘라내 버려야 하는 것이다.

 

나무가 우리에게 준 것들은 생각도 하지 않은 채.

 

학살당한 나무들을 보며, 이것이 과연 제대로 된 삶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낙엽이 많이 떨어진다고 베어버리는 이런 생활 형태가 과연 올바른 삶일까... 아니라는 생각.

 

이것은 기본에서 너무 벗어난 삶이라는 생각. 우리는 기본, 기본 하지만, 정작 자신이 조금 불편해지면 기본을 무시하고, 그냥 자기 편리대로 하려고만 한다.

 

이럴 때 기본을 부르짖으면 경직되었다느니, 원론주의라느니, 근본주의라느니, 급진주의라느니 하는 말들로 자신의 삶에서 배제시킨다.

 

그래서 점점 기본에서 멀어지고, 어느 새 기본은 이제는 지킬 수 없는 아주 먼 과거의 일이 되어 버린다.

 

하지만 기본은 기본이다. 지켜야 한다. 이런 기본을 주창하는 잡지, 이것이 바로 "녹색평론"이다. 우리에게 우리가 잠시 잊고 있었던 기본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잡지.

 

그래서 나는 두 달에 한 번 이 잡지를 받으면 다시 기본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내 삶 역시 기본에서 많이 멀어져 있지만, 기본이 있음을 잊지 않으려 한다.

 

지금 한창 '노동개혁'이라는 말이 떠돌고 있는데(사실은 개혁이 아니라, 개악이다. 비정규직을 없앨 수도 없고, 또 청년 일자리를 만들 수도 없고, 오로지 노동자들을 쉽게 해고할 수 있는, 그런 노동개혁이 어찌 개혁일 수 있겠는가) 진정한 '노동 개혁'은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 기본... 그것은 노동자들의 노동이 생계가 아닌 생활이 될 수 있게 보장하는 것이다. 그 보장은 노동시간 단축, 제대로 된 노동 환경, 적절한 임금 등으로도 될 수 있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할 수 있는 일도 있다.

 

그것이 바로 "기본 소득".

 

이번 호에서는 기본 소득에 대해서 또 다루고 있다. 성남시에서 추진하고 있는 청년 배당과, 농민에게 지급하는 기본소득, 그리고 알래스카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기본소득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으며, 이 기본소득은 민주주의와 함께 갈 수밖에 없음을 여는 글에서 말하고 있다.

 

여기에 여러 운동들,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운동들을 다루고 있는데...

 

한 편 한 편의 글을 읽으며 기본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 기본이 몸에 밴다면 낙엽을 쓰레기로 인식하는 일도, 그래서 나무를 이렇듯 학살하는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나무에도 이렇게 기본을 지킨다면, 사람에게는 말할 것도 없겠지.

 

녹색평론 144호를 읽으며, 처참하게 잘려나간 나무들을 보며, 다시 기본에 대해서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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