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읽으며 빙그레 웃음지어보기는 참 오랜만이다.

 

  시들이 어려워 해석하기 바빴는데... 사실, 해석도 잘 안 되고, 모호한 개념들만 머리 속에서 맴돌다 끝난 시들도 많고, 도대체 뭐야 하는 생각, 이렇게 시를 써서 과연 누가 읽을까 했던 시들도 많았는데...

  이시영의 이 시집에 있는 시들은 나에게 무척 친숙한 시들이었다. 시들이 친숙하다는 말보다는 시의 내용이 내게 친숙하다고 해야 맞겠다.

 

  고은의 "만인보"를 읽는 듯한 느낌이라고 해도 좋겠지만, 고은의 "만인보"와는 다른 느낌을 주고 있는데...

 

  그 이유는 이 시집에 나오는 인물들이 주로 시인이 만났던 사람들, 그것도 민중문학 운동을 하던 사람들이라는데 있다는 생각을 했다.

 

시로 읽는 문학 동네 뒷이야기 정도라고도 할 수 있는데... 단지 문학 동네 뒷이야기가 아니라, 문학인들이 겪어내야 했던 60-80년대 우리나라 현실에 대한 시인의 표현이라고 하는 것이 더 좋겠다.

 

어떤 면에서 보면 참 마음이 아픈 내용이어야 하는데, 후일담 비슷하다고 여겨서인지, 아픈 마음, 분노보다는 따스한 느낌, 배시시 배어나오는 웃음이 넘쳐 흐른다.

 

시인 자신이 겪었던 감옥 얘기도 어둡고 무겁다기보다는 밝고 경쾌하다. 그래서 그땐 그랬구나, 우리가 이런 시절을 거쳐왔구나 하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된다.

 

무엇보다도 참 많은 문인들이 나오는데... 문학에 관심있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은 이름을 들어봤을 문인들이 시에 등장한다.

 

시집을 다시 뒤적이지 않아도 떠오르는 이름으로 '김남주, 이문구, 황석영, 송기원, 윤흥길, 천상병, 조태일, 김동리'가 있다.

 

창작과비평사에 근무하면서 시인은 많은 문인들을 만났고, 많은 경험을 했다. 그리고 이것들이 어느 순간 시로 다가왔다. 그래서 이 시집이 나오게 되었고, 시를 통해서 우리의 지난했던 과거를 잊지 않게 되었다.

 

시인은 시의 '자서(自序)'에서 이렇게 말한다.

 

'시가 무슨 '보복'처럼 한꺼번에 몰려왔다. 나는 그것을 밤을 새워 성실하게 받아 적었다.'

 

이 시집에 등장하는 숱한 사람들은 시인과 한 몸이 되어 한 시대를 겪어냈던 사람들이다. 이미 고인이 된 사람들도 있지만, 그들이 있었기에 이 시집이 가능하기도 했으리라.

 

결국 우리의 과거는 지금 우리를 만들어주고 있으며, 우리가 만났던 사람들은 지금의 우리를 만들어내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시집은 그 점을 잘 보여주고 있으니...

 

지금, 나는 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 시집에 나오는 많은 것들이 과거로 사라졌지만, 그래서 지금 읽으면서 웃음을 머금을 수 있지만, 여전히 쓸쓸함을 주는 시.

 

이 시집에서 극히 적은 그러나 적어도 이 시집에서 너무도 쓸쓸하게 아직도 현재진행형으로 다가오는 이 시의 내용이 이제는 끝나도록.

 

8 · 15 

 

  기념식에서 돌아온 독립유공자 유족이 올해도 어김없이 비닐천막 문을 열고 들어간다.

  조국의 하늘은 저리 푸르건만

 

이시영, 바다호수, 문학동네. 2004년.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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