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차를 타고 가다보면 길 가로 손수레를 끌고 가는 할머니를 보게 된다. 이상하게도 내 눈에는 할머니들만 보인다.
할아버지도 있으련만... 어려운 환경에서 적응을 하고, 삶을 유지하는 존재가 바로 여성인듯이, 무거운 손수레를 끌고 가는 할머니들이 더 눈에 잘 띠는 것인지... 분명 할아버지들이 손수레를 끌고 가는 것을 본 것 같은데, 기억에는 할머니들만 남아 있다.
차들이 씽씽 달리는데, 남들은 차를 타고, 다른 사람이 운전하는, 또는 제가 운전하는 네 바퀴에 실려 편안하게 가는데,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언덕길을 사람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이높이 쌓인 폐휴지며, 옆에 보이는 깡통, 병 등등을 실은 손수레를 끌고 가는 할머니.
이제는 편안하게 집에서 쉬어도 좋으련만, 할머니들은 손수레를 끌고 생계를 위해서 출근을 한다. 고물상으로.
무게로 달아 받아오는 하루 노동의 대가, 삶의 보존.
이 생각이 든 건 박성우의 시 '고양이'를 읽고나서다. 이 시에서 어떤 슬픔, 그러나 강한 생명력을 발견했다. 그리고 길 가로 손수레를 끌며 지나가는 할머니, 그 할머니를 받아주는 고물상이 생각났다.
고양이
고양이가 새벽 쓰레기를 뒤적인다
부스럭부스럭, 앞발에 뜯긴 비닐봉투가
빈병과 깡통을 신경질적으로 쏟아낸다
움 칫, 눈이 동그랗게 커진 고양이
솟은 등을 나른한 하품처럼 내려
요란하게 구르는 소리들을 느릿느릿 쫓는다
여전히 쓸만한 몸이라는 듯 데굴
데굴 구르다 멈춘 것들을
종아상자 쪼가리와 신문지 위로 떠민다
한바탕 쓰레깃더미에서 나뒹군 고양이
털썩 주저앉아 멀뚱멀뚱 숨을 고른다
가시처럼 뻣센 수염이 뻗어 있는 홀쭉한 입
쫘악 벌렸다 오므리고는 몸뚱이 일으킨다
아랫배에 묻은 흙먼지를 툭툭 털어낸
등 굽은 고양이가 모퉁이 길을 나선다
뒤적여 모은 고물 얼기설기 쟁인 손수레 끌고
아슬랑아슬랑 제일고물상으로 들어가는 늙은 고양이
박성우, 가뜬한 잠, 창비, 2012년 초판 5쇄. 68-69쪽.
고물상은 이런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생활을 책임져주는 고마운 존재다. 게다가 고물상은 이미 수명이 다했다고 사용했던 사람에게 버려진 물건들이 새로운 생명을 얻게 해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삶에서 수명이 다해가는 노인들이, 수명이 다했다고 여겨지는 물건들에 생명을 불어넣고, 또 자신들의 생명을 연장하는 그런 행위.
손수레에는 그런 삶이 들어 있다. 그런 손수레를 밀어주지는 못할망정, 운전에 방해된다고, 빵빵거리지는 말아야지, 투덜거리지는 말아야지 하는 생각을 한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재활용될 수 있는 것들, 폐휴지들 잘 모아서 가져가기 편하게 할 수도 있지 않을까.. 몇몇 가게들에서는 그렇게 하고 있다고도 하는데...
아파트 단지에서 매주 재활용을 하고, 그 이익을 공동으로 나누기도 하는데, 재활용 차가 오기 전에 먼저, 필요한 노인들에게 손수레로 실어갈 수 있는 기회를 주면 어떨까 하는 상상.
어차피 자신들은 필요없다고 내 놓은 물건들, 생활에 필요한 사람들이 가져가고, 생계에 필요한 사람들이 가져가고, 그 나머지를 공동으로 나누어 자신들이 다시 가져간다면... 서로 좋지 않을까 하는 상상.
이러고 보니, 고물상은 재활용을 통해 환경을 살리는 장소이기도 하다. 또한 번듯한 일자리를 갖기 힘든 노인들의 생계를 책임져, 노인들을 살리는 장소이기도 하다. 동네에 고물상이 있다고, 지저분하다고 투덜거렸던 나를 반성한다.
이렇게 시는 나를, 주변을 돌아보게 해준다. 고마운 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