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 말리기

       - 아파트 주차장에서

 

차가 썰물처럼 빠져나간 아파트 주차장

삶의 부끄러움을 이미 다 먹어버린

할머니들이

빨간 고추를 널어놓는다.

부끄러움을 말려버리려는 듯이.

 

하늘이 내려와 고추에게로 들어간다.

하늘을 받아들인 고추가 부끄러움을 못 이겨

발갛게 빨갛게 익어가면

그 부끄러움을 사람들이 먹는다.

하늘을 먹는다.

 

텅 빈 주차장 위로

파란 자리 위 고추는 빨갛고

빨간 고추 위 하늘은 파랗고

계절은 차갑게 식어가는데

우리의 마음은 따뜻하게 익어간다.

 

겨울을 견디라고

우리 몸을, 마음을 데워주기 위해

할머니들이 아파트 주차장에서

고추를 말리고 있다.

고추가 제 몸을 밝게 붉게 익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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