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뒤숭숭하다.
롯데그룹 후계자 문제로 형제간에 싸움이 일어난 것을 비롯하여, 교사들의 성추행 사건으로 인한 교육계에 대한 불신.
학원에서 선행학습을 금지한다고 하더니, 이제는 학교에서 방과후 교육에서는 선행학습을 실시해도 된다고 하니...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하는지... 대학을 가고자 하는 모든 청소년들이 자기가 어느 것을 하고 싶어하는지와는 상관없이 수학을 잘해야 하는 그런 현실도 좀 어지럽고...
물론 수학이 단순한 문제풀이가 아니라, 살아가면서 익혀야 하는 가장 기초적인 논리, 합리성을 획득할 수 있는 좋은 교과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지만, 우리나라 학생들이 생각하는 수학은 대학을 가기 위한 사다리에 불과하다.
대학에 들어가면 수학과 관련된 전공이 아니면, 바로 걷어차 버리는... 수학이 자신이 몸과 마음에 배어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도 못한 채.
여러가지로 어지러운데..,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고.
배창환이 시집을 빼들었다. 그가 교사라는 사실, 전교조 활동으로 해직도 당했다는 사실, 다시 복직하여 학교에서 학생들이 어려워하는 '시교육'이 아닌, 학생들의 마음에 다가가는 '시교육'을 하려고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교사들의 성추행으로 뒤숭숭해진 교육계에 이런 교사도, 이렇게 시를 쓰면서 아이들과 함께 하려는 교사도 있음을 확인하고 싶었다고나 할까...
이 시집에 실린 시 중에... 이것이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이 아닐까... 우리는 그동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우리가 뒤집어야 할 현실은 이토록 뿌리깊게, 견고하게 버티고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 시다.
풀, 전쟁
배추밭 만들려고 햇살 따가운 날
바랭이풀 자욱한 풀밭에 호미를 들이댄다.
깡마른 땅을 찍어나가면
어떤 놈은 허리가 잘려 나오고
뿌리 근처까지 걸려 나오는 일이 있지만
실뿌리까지 온전히 딸려나오는 법은 없다.
당기는 힘에 저항 못하고 올라올 경우에도
마지막 순간에는 후생(後生)을 위해
한올의 잔뿌리라도 남겨두고 와서
죽은 체하는
저 풀,
끝까지 드러내지 않는 이 풀들의 실체.
우리는 이 풀뿌리와의 전쟁을 치러온 셈인가
젊은날 우리는 이 풀뿌리를 비유하여
한줌밖에 안되는 권력이라 했다
한줌,
아니었다.
그건 거대한 뿌리였다.
아무리 파뒤집고 찍어대도 또 자욱해질 이 풀밭
저 거대한 뿌리를 향하여
때로는 호미를 던져버리고 싶은
나를 향하여
꼭꼭 찍어가야 할
끝이 보이지 않는 이 전쟁.
배창환, 흔들림에 대한 작은 생각, 창작과비평사. 2000년 초판 3쇄. 52-53쪽.
재벌가들이 벌이는 그들만의 진흙탕 싸움도, 수학으로 인한 머리 아픔도, 교사들의 성추행 사건도, 모두 이 풀과의 전쟁같지 않은가.
다 뽑았다 하는 순간에도 잔뿌리를 남겨 다시 자라나는 풀. 우리가 아직 해결하지 못한 그 숱한 일들에 '호미를 던져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겠지만... 그래도 자신을 추스리면서 '꼭꼭 찍어가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이 든 시다.
이 시에 이어서 시 한 편 더... 아무리 교사들이 성추행 사건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지만, 그럼에도 좋은 교사들이 많다는 사실.
노력하는 교사들이 많다는 사실... 지금은 국회의원이 된 도종환 시인이 '어릴 적 내 꿈은'이라는 시에서 말했던 그런 교사들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겠다. 그래야 우리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
배창환 시인은 도종환 시인의 시에 붙여 이런 시를 썼다. 이런 교사들... 찾아보자.
내 꿈은
- 도종환 선생 시풍으로
어릴 적 내 꿈은
선생님이 되는 게 아니었지.
조그만 산골 밭뙈기 갈아
아름다운 사람과 오순도순
나눠먹는 것이었지.
호박이 열리고 감자 굵어지면
뒷집에도 한 소쿠리 나눠주면서
젊을 적 내 꿈은
싸움으로 밤낮을 바꾸는
교육운동가가 되는 게 아니었지.
깊디깊은 산골에 이름없는 교사가 되어
아이들과 양지녘에 꽃을 가꾸며
가슴 적셔줄 사랑의 시를 노래하는 것이었지.
문제교사가 되고 요주의 인물이 되어
학교서 쫓겨나고 복직도 못하고
이름 석자 앞에 예전엔 상상도 못한
겁나는 직책을 주렁주렁 달고 있는
지금도 내 꿈은 그런 것이지
흙을 하늘로 아는 농군이 되고
아이들 앞에 부끄럽다는 국어선생님 되어
마지막날까지 시를 가르치다 가는 것이지.
배창환, 흔들림에 대한 작은 생각, 창작과비평사. 2000년 초판 3쇄. 48-49쪽.
안 좋은 일로 언론에 오르내리는 교사들보다,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아이들과 함께 최선을 다하는 교사들이 많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되겠다.
이런 마음으로 교사를 하는 선생님들이 있음을...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