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승 하면 떠오르는 시는?

 

몇 개가 있다. 아주 유명한 시. 아마도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서, 지금은 아닐지 모르지만, 내 학창시절에는 빠지지 않고 나오는 시인이었다.

 

'푸라타나스' 이렇게 표기되어 있다. 이 시집에는. 아마도 플라타너스의 옛표기일테다.

 

'꿈을 아느냐 네가 물으면,' 이렇게 시작되는 이 시도 유명하고,

 

'더러는 / 옥토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이고저……'로 시작하는 '눈물'이라는 시도 유명하고,

 

'가을에는 / 기도하게 하소서……'로 시작하는 '가을의 기도' 도 유명하다. 나는 이 시들을 교과서에서 배웠다. 시험을 위해서...

 

그래서 김현승은 내게는 '고독'의 시인으로 각인되어 있다. 시집 제목에도 '절대 고독'이 있고, 그의 시에 '고독'이라는 말이 많이 나오고, 또 '까마귀'도 많이 나오는데...

 

그럼에도 이런 교과서적인 시는 얘기하지 않으련다. 자꾸 시에서 멀어지게 하기 때문이다. 

 

이 고독의 시인이라는 김현승에게 이렇게 편안한 느낌을 주는 시가 있다니.. 지금 이 시를 읽으며 편안함을 함께 느껴봤으면 좋겠다.

 

일요일의 미학

 

노동은 휴식을 위하여

싸움은 자유를 위하여 있었듯이,

그렇게 일요일은 우리에게 온다.

아침 빵은 따뜻한 국을 위하여

구워졌듯이.

 

어머니는 아들을 위하여

남편은 아내를 위하여 즐겁듯이,

일요일은 그렇게 우리들의 집에 온다.

오월은 푸른 수풀 속에

빨간 들장미를 떨어뜨리고 갔듯이. 

 

나는 넥타이를 조금 왼쪽으로 비스듬히 매면서,

나는 음부(音符)에다 불협화음을 간혹 섞으면서,

나는 오늘 아침 상사에게도 미안치 않은

늦잠을 조을면서,

나는 사는 것에 조금씩 너그러워진다.

나는 바쁜 일손을 멈추고

이레 만에 편히 쉬던 신의 뜻을 이제야 알 것 같다.

 

나의 남이던 내가,

채찍을 들고 명령하고

날카로운 호르라기를 불고

까다로운 일직선을 긋는 남이던 내가,

오늘은 아침부터 내가 되어 나를 갖는다.

 

내가 남이 될 수도 있고

또 내가 될 수 있는

일요일을 가진 내 나라 - 이 나라에

태어났음을 나는 언제나 아름다와한다.

 

김현승, 김현승-한국현대시문학대계 17. 지식산업사. 1983년 3판. 125-126쪽. 

 

시인의 이 즐거움이 누구에게나 통하였으면. 이제는 세계적으로 하루 8시간 노동이 아니라, 6시간 노동으로 줄이려고 하고 있는데... 아직도 우리나라는 세계 최장의 노동시간을 자랑하고 있지 않은가.

 

이제는 노동시간에 대하여는 소모적인 논쟁을 끝내야 하지 않겠는가. 주5일 노동, 주당 40시간 이하가 아니라, 주5일 노동 주당 30시간 노동이 정착되어야 할텐데...

 

그래야 시인이 '이 나라에 / 태어났음을 나는 언제나 아름다와한다'고 노래했듯이 우리 모두가 아름다운 이 나라를 기꺼이 노래부르며 지낼 수 있을텐데...

 

'저녁이 있는 삶'에 이어서 이제는 '주말이 있는 삶'이 확실히 보장되는 시대가 되어야 하는데... G20이라고 자랑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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