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힘 - 절망의 시대, 시는 어떻게 인간을 구원하는가
서경식 지음, 서은혜 옮김 / 현암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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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시대, 시는 어떻게 인간을 구원하는가'라는 작은 제목을 달고 있다. 절망의 시대일수록 시는 우리 곁에 와야 한다는 말로 들린다.

 

절망의 시대에 무슨 서정시가 필요하냐가 아니라, 절망의 시대이기 때문에 서정시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지녀야 한다.

 

 

'승산의 유무나 유효성, 효율성 같은 원리들과는 전혀 다른 원리에 관한 이야기... 그것은 시인의 언어이며, 그것이 서정시다.' (110쪽)

 

'승산 유무를 넘어선 곳에서사람이 사람에게무언가를 전하고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다.

 그러한 시는 차곡차곡 겹쳐 쌓인 패배의 역사 속에서 태어나서 끊임없이 패자에게 힘을 준다. 승산 유무로따지자면 소수자는언제나 패한다. 효율성이니 유효성이라는 것으로는 자본에 진다. 기술이 없는 인간은 기술이 있는 인간에게진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의 원리로서 인간은 이러해야 한다거나, 이럴 수가 있다거나, 이렇게 되고 싶다고 말하는 것이며, 그것이 사람을 움직인다. 그것이 시의 작용이다.' (110-111쪽)

 

이 책에서 중국의 루쉰을 말하는 장면에서 나온 말이다. 그리고 이 말이 곧 이 책의 성격을 말해준다고 할 수 있다.

 

효율성, 승패를 떠나 해야만 할 일, 하고자 하는 일을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시이고, 서정시고, 그런 서정시는 두고두고 우리에게 힘을 줄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시에 본래적으로 이런 힘이 있을까? 마치 원석을 땅에 그대로 놔두면 그냥 돌덩이에 불과하듯이, 시도 우리들이 작용해야 힘을 발휘한다.

 

'시에는 힘이 있을까? 나의 대답은 이렇다. 이 질문은 시인이 아니라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던져져 있다 시에 힘을 부여할지 말지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우리에게 달린 것이다.' (5쪽. 한국어판 서문에서)

 

그렇다. 시 자체의 힘을 생각하기보다는 시와 함께 하는 우리들을 생각해야 한다. 우리들이라고 하기가 그렇다면 자신을 생각해야 한다.

 

이 책의 저자인 서경식은 그의 자전적인 글 '나는 왜 글쟁이가 되었는가?'에서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경계인으로 살 수밖에 없는 자신에게 삶의 길을 제시해준 대상으로 시를 들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나온 소위 저항시들이라고 하는 것. 형들이 조국에가서 구속되어 언제 석방될지도 모르는 상태, 자신 역시 일본인도 한국인도 아닌 상태로 무엇을 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그 어려운 독재상황에서도 그 상황을 돌파하려는 몸짓을 보인 시들은 그에게 삶의 힘을 불어넣어 주었다고 한다.

 

그가 좌절하지 않고 지금까지 글과 더불어 살아오게 된 힘은 바로 그런 시에서 왔다고...

 

하여 시는 절망의 시대에 오히려 빛을 발할 수 있다. 시는 유용성을 먼저 따지지 않기에... 당연히 해야 할 일을 말하기에... 결과를 보는 것이 아니라 할 수밖에 없음을, 그것이 사람다운 삶임을 시가 보여주고 있기에 시는 절망의 시대에 길을 인도하는 빛이 되는 것이다.

 

이런 시의 힘 말고도 많은 글들이 이 책에 묶여 있는데... 무엇보다도 경계인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자신이, 그는 이를 디아스포라 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한다 - 그래도 제대로 살았다고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시의 힘, 문학의 힘이었다는 것을 이 책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

 

그가 어린시절, 잠깐의 실수로 비행을 저지른 친구에게 이용당하는 모습,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소설을 쓰는 과정 - 이 소설은 지금 남아 있지 않다고 하지만 - 에서 그는 문학이 어떻게 치유로써 다가왔는지를 '어린 시절 - 첫 단편소설'이라는 글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문학은 치유로써의 기능도 하지만, 길을 보여주는, 도저히 앞이 보이지 않는 시절에서도 앞으로 가는 사람이 있음을, 앞으로 가야만 함을 보여주고 있으니, 그것이 바로 시의 힘이다. 문학의 힘이다.

 

지금, 우리 시대... 이런 시의 힘, 문학의 힘이 아직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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