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 건축 이야기
김원 지음 / 열화당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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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에 관한 책을 몇 권 읽고 있는 중.

 

전혀 나와는 상관이 없을 것 같은 건축에 요즘 관심이 가는 이유는, 내가 사는 공간을 이해하고, 어떤 공간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알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간과 공간을 내 삶을 엮어가는 장소로 만들고, 그 장소에서 행복한 삶을 꾸리고 싶은 욕구는 누구나 지니고 있을텐데, 그럼에도 요즘은 건축은 전문가들만이 하는 일이고, 자신은 주어진 공간에서 지내기만 하면 된다는 생각을 지닌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과 공간에서 인간이 떨어져 나와 객체로 지내게 되는 현상. 이것이 바로 현대의 건축이고, 현대인들의 모습이 아닐까 한다.

 

눈에 띠는 대로 건축에 관한 책을 읽어서 전문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그냥 관심 있는 읽기만 하고 있는 중이지만, 그래도 몇 권을 읽다보니 머리 속에 남아 있는 건축가들이 있다.

 

이 책을 쓴 김원도 그 중의 한 명.

 

멋있는 건축, 훌륭한 건축을 이야기할 때 가끔 등장하는 이름이었기에, 중고서점에 나온 그의 책을 보자마자 망설이지 않고 선택을 한 것.

 

1999년에 쓴 책이니, 지금으로부터 15년이 넘게 지난 옛일이긴 하지만, 건축이 기본 100년이 간다고 하면 그가 한 고민이 지금도 유효하다는 데는 다른 의견이 없다.

 

특히 이 책에서 말하는 우리 전통가옥을 새마을 운동이라는 이름으로 무참히 없애버린 것에 대한 분노에는 나 역시 동감하며, 건축가가 자신의 이름을 드날릴 기념비적 건축을 하는 것보다는, 자연과 사람들의 삶에 녹아드는 건축을 하는 것이 더 좋고, 자신은 그런 건축을 하고 싶다는 그의 자세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여기에 그가 성공회대성당을 증축할 때 원 설계자의 의도를 따르는 과정이 나와 있는 글을 읽으면, 그는 건축 위에 자신의 이름을 새기기보다는 건축 속에 자신을 감추는 쪽을 택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여기에 한강성당을 건축할 때의 이야기는 이 책에 두 번 나오는데... 감동적이다. 종교 건축이 건축에 종교를 흡수하는 것이 아닌, 건축이 종교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말. 건축가의 의도가 잘 드러나는 건축보다는 그 곳에서 종교적인 행위가 자연스레 일어날 수 있도록 건축가의 의도를 숨겨야 한다는 그의 이야기... 생각할 만하다.

 

여기에 독립기념관과 국악당에 얽힌 이야기는 지금도 참조할 만하며, 무엇보다도 그가 안타까워하고 분노하는 국립중앙박물관(구 중앙청, 구 조선총독부) 철거에 대해서는 그의 주장에서 생각할 것이 많다.

 

지금은 사진으로밖에는 볼 수 없는 조선총독부 건물, 경복궁 내에 그 건물이 있는 것이 민족 정기를 훼손시키는 일이었다면 그 건물을 분해해서 다른 곳으로 옮겨 다시 조립해 놓았으면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용서하라. 그러나 잊지는 마라" 이것이 파리의 유대인 레지스탕스 기념관에 있는 문구라는데... 일본의 식민통치를 우리는 용서할 수 있다. 이미 과거의 일이고, 그들의 진정한 반성이 있다면, 용서를 해야 한다. 용서는 강자가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용서를 했다고 잊자는 얘기는 아니다. 용서는 하되, 잊어서는 안 된다. 바로 이 잊지 않기 위한 행위로 조선총독부 건물을 남겨 놓자는 얘기도 나왔었는데.. 지금은 이미 지난 일이지만...

 

이런 일에도, 동강 댐 건설 반대에도 건축가들이 관여를 한다. 아니 관여를 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건축가의 사명이다. 그들의 책무다.

 

이런 말을 김원은 이 책에서 하고 있다. 건축가는 단지 건물을 설계하고 짓는 사람이 아니다. 건축가는 사람들의 삶을 설계하고 살아가게 하는 장소는 마련해주는 그런 사람이다.

 

따라서 건축가는 시간과 공간에 대한 철학적 신념이 있어야 한다. 그는 과거를 보고, 미래를 예측하여 현재를 살아가는 장소를 마련해주는 사람이어야 한다.

 

여기에 자연에 대한 인식... 한 마디로 건축가는 철학자여야 한다. 이것이 이 책을 읽은 느낌이다. 첫 시작을 풍수 사상에서 시작하는 것... 풍수 사상이 사라져야 할 미신이 아니라, 건축을 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배우고 고민해야 할 학문이라는 것. 여기에 과학이 결합되어야 한다는 것.

 

그런 얘기를 하고 있다. 참, 많은 이야기들이 이 책에 실려 있다. 우리나라 건축이 걸어온 길을, 김원이라는 건축가를 통해 되돌아보게 하는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으니, 우리나라 건축가들 중에서 기억해야 할 건축가가 또 한 명 늘었다. 나중에 이들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이야기해주는 책이 나왔으면 좋겠다. 나같은 문외한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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