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철의 20세기 건축산책 탐사와 산책 2
김석철 지음 / 생각의나무 / 2002년 10월
평점 :
절판


서울에서는 서울역 고가를 폐쇄하느냐 마느냐는 논쟁이 있었다. 서울역 고가를 차가 다니지 않게 하고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만든다는 서울시와 차량이 다니지 않으면 엄청난 교통체증과 남대문 시장 상인들의 생계에 지장을 줄 수 있어서 반대한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었던 것.

 

 

차량이 다니지 않고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가면 좋겠지만, 수십 년 동안 그곳에서 생계를 유지해온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장 덜 가는 방향으로 일이 추진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이런 일들을 하는 사람이 단지 공무원일까? 시장이 바뀌었다고, 대통령이 바뀌었다고 이렇게 도시 계획이 바뀔까?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들이 정책을 내긴 하겠지만, 이 정책을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장소로 만드는 일은 건축가가 한다.

 

건축은 그래서 토목이 아니다. 대학에서 5년이나 교육을 하는 이유도 건축은 그냥 건설을 지나서 삶을 재구성하는 인간의 활동이기 때문이 아닐까.

 

아주 짧은 기간에 엄청난 도시로 변모한 서울은 옛것과 현대적인 것이 어우러지는 곳이 되었어야 했으나, 이를 전체적으로 고려하지 않고 개발만 서두르는 바람에 전통을 잃은 도시가 되어가고 있었는데...

 

지금도 늦진 않았으리라. 서울이 또 우리나라 곳곳이 아직도 옛것을 지니고 있고, 옛것이라고 해서 무조건 존중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또 무조건 없애야 한다고 생각지도 않으니, 옛것과 현대적인 것, 미래적인 것이 어울리게 장소를 만들어가는 일을 우리가 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럴 때 예전에 건축에 종사한 사람들, 현대 건축을 이끌어 건축 역사에 이름을 남긴 사람들과 그들의 건축을 보는 것이 좋다.

 

그들이 역사에 이름을 남긴 이유가 있을테고, 그들의 건축이 칭송을 받는 이유가 있을테니 말이다.

 

건축 전문가가 아닌 나같은 사람은 건축의 세세한 부분에까지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좋아보이는 건축과 좋아보이지 않는 건축은 느낄 수 있으니, 현대 건축의 선구자들에 대해서 조금씩 알아둔다면 건축을 보는 안목이 조금은 높아지지 않겠는가.

 

사람들이 건축을 보는 안목이 높아지면 그만큼 우리 삶의 질도 높아질테니... 안목이 높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공간에 엉터리 건축이 들어설 여지는 없기 때문에.

 

이 책에는 12명의 건축가가 나온다. 건축계에서는 모두 잘 알려진 사람이겠지만, 건축 책을 그다지 많이 읽지 않은 나에게는 들어본 이름도 있고, 처음 듣는 이름도 있다.

 

그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오토 바그너, 안토니오 가우디, 찰스 레니 매킨토시,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발터 그로피우스, 미스 반 데어 로에, 르 코르뷔지에, 알바 알토, 루이스 칸, 루이스 바라간, 필립 존슨, 그리고 우리나라 건축가 김중업

 

이들은 각 나라를 대표할 뿐만 아니라 세계 건축을 대표할 만한 건축물을 남긴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한 시대를 이끌었고, 후대에도 많은 영향을 준 사람들이다.

 

이들의 공통점... 아니 건축을 하고자 한다면 이들에게서 무엇을 배워야 할까를 생각했는데... 단지 이들의 작품을 모방해서는 안된다. 그러면 그것은 이들에게서 잘못 배운 것이다.

 

건축을 한다고 해서 건축에만 몰두해서는 안된다. 적어도 건축가는 철학이 있어야 한다. 세상을 읽을 줄 알아야 하고, 사람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하며,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고민해야 한다. 여기에 과학적, 수학적 지식이 뒷받침되어야 하고, 예술적 감각이 있어야 한다.

 

참 어려운 일이다. 단지 설계만 잘한다고 해서 훌륭한 건축가가 되는 것이 아니다. 이들을 보면 그렇다. 시대를 읽고 그 시대 속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아름답고 행복하게 자연과 사람과 어울리며 살아갈 수 있을까를 건축 속에 담아내야 한다.

 

이들은 이를 실현해 내었다. 그래서 훌륭한 건축가로 이름을 남기게 되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슬퍼졌다. 우리나라 교육이 과연 이토록 훌륭한 건축가가 나올 수 있는 구조를 지니고 있는가.

 

오로지 대학 입시를 위해 경주마처럼 내달리기만 하는 아이들, 논술이 중요하다니 아예 논술 모범답안을 외우는 아이들, 독서가 중요하다니 책의 내용을 요약해주는 학원이 성행하는 우리나라 사교육 현실, 무언가 깊이 고민하고 실행해 볼 시간을 지닐 수 없는 아이들, 자신의 앞날이 캄캄하다고 느끼는 젊은이들...

 

이들이 훌륭한 건축가가 되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시간이다. 여유다. 정말로 심심할 시간이다. 심심해서 무언가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심심해 할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 시간에서 인문학이 나오고 좋은 건축이 나온다.

 

이게 뒷받침 되지 않으면 훌륭한 건축은 물건너 간다. 지금 우리는 훌륭한 건축이 아니라 그냥 건설만이 판치는 세상에 살고 있지는 않은지, 앞으로도 그렇게 살고 싶은지... 되물어야 한다.

 

이 책에 나오는 12명의 건축가처럼 적어도 인류의 유산으로 무언가를 남길 건축가가 앞으로 우리나라에서 계속 나오게 하기 위해서는 어린이, 청소년 교육을 다시 생각해야 하고, 그 다음에 건축 교육에 대해서 고민해야 한다.

 

이런 생각이 드니 책을 읽고 건축물들을 보는 즐거움이 뒤로 사라지고 만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앞길이 열려 있다. 좋은 건축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들이 많이 읽히면 우리들 생각도, 건축을 보는 우리들 눈도 서서히 변해 간다.

 

그때는 이 책에 실린 건축가들과 건축물들에 상응하는 건축들과 우리들이 함께 살고 있지 않을까. 

 

건축가에 대한 입문서로써 어렵지 않고 핵심을 간결하게 잘 짚어내어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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