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오신 날.

 

우리나라는 종교과 정치가 분리된 나라인데... 그럼에도 세계4대 종교 중에 성탄절과 더불어 공식적으로 휴일이 된 날이다.

 

그만큼 제정분리사회라고 해도 종교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는 얘기인데... 우리나라 전통 이념이자 종교라고 할 수 있었던 유교가 쇠퇴하고, 이제는 철학이나 도덕 또는 대학에서 강의하는 학문으로만 남아 있게 된 반면에, 오래 된 종교인 불교는 아직도 많은 신자들이 있고, 근대에 들어 전래된 기독교 역시 많은 신자들이 있으니, 이 두 종교에 대한 기념일만 공휴일로 지정하고 있는 상태이다.

 

부처님 오신 날.

 

왜 부처님이 오셨을까? 예수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인간의 죄를 대신 갚기 위해 이 땅에 왔다면, 부처님은 우리들도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왔다고 할 수 있을까?

 

신과 인간이 엄격하게 분리된 서양 종교와 달리 불교는 인간도 신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으니...

 

부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우리 모두 부처가 되어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나길 바랐기 때문... 모두가 행복한 삶을 살기를 원했기 때문.

 

전례없이 종교인들이 늘어난 때이기도 싶은데...어떤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종교 신자들의 수를 모두 합하면 우리나라 인구수보다도 훨씬 많다고 할 정도니...

그러면 세상은 좀더 행복해져야 하지 않나? 종교인이 많으면 배려, 관용이 넘치고, 서로가 서로를 사랑으로 대해야 하지 않나.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자신의 일처럼 돌보아야 하지 않나. 군림하기 보다는 함께 하는 그런 삶들로 넘쳐나야 하지 않나. 그런가? 과연 지금 세상이 그런가?

 

유진택의 시집을 헌책방에서 구했다.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아직도 낯선 길가에 서성이다"

 

종교에 대입하면 나는 아직도 낯선 종교의 길에서 서성이고 있을 뿐인데... 이 시집은 우리나라 농촌, 자연에 대해서 읊고 있는데... 그렇지만... 처음에 나온 시 '동구(洞口)'

 

                           동구(洞口)

 

나무들이 굵어 있다

마을에는 이미 젊은이들이 없다

 

유진택, 아직도 낯선 길가에 서성이다. 문학과지성사. 1996년. 11쪽.

 

마을 입구인데... 나는 종교의 입구에 서 있는가 하는 생각.

 

종교는 이미 성장했고, 더이상 성장할 수 없을 정도로 전성기를 맞이했는데... 그런데 그 종교에 사랑이 없으면, 배려가 없으면 어떻게 되지.

 

진정한 신자들은 없고 오로지 자신의 행복만을 기원하는 신자들만 있다면, 그 종교는 젊은이들이 떠난 마을과 같지 않을까.

 

마을에 있는 나무들은 아름드리 나무가 되었으나, 그 나무들과 함께 할 젊은이들이 없다면 그게 무슨 소용이랴.

 

종교가 외형적으로 성장하면 무엇하랴? 그 종교를 살아가는 사람들, 진정한 신자들이 없다면 말이다.

 

이 시를 이렇게 읽으면 안 되는데... 부처님 오신 날과 겹쳐 읽으니... 종교가 연상이 되어 버렸다.

 

종교라는 마을 입구에 서서, 참 많이도 자란 그 종교들을 보면서 그러나 종교 교리를 실천하려는 신자들이 점점 줄고, 없어지는 현실이 떠올랐으니..

 

아직, 나는 마을에 들어서지 못했다. 그냥 입구에 서 있을 뿐이다. 종교도 마찬가지지. 그 입구에서 서성이기만 하고 있을 뿐.

 

이런 나를 마을로 인도하려면 마을의 젊은이들이 환하게 웃으며 지내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듯이, 종교가 함께, 서로를 보듬으며, 서로 도우며, 서로 사랑하며, 행복하게 위가 아닌 낮은 곳에서 행복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나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종교인이 되기 위해서는, 젊은이들이 떠나고 나무들만 커가는 마을이 아닌, 젊은이들이 환하게 웃으며 지내는, 그래서 젊은이 늙은이 할 것 없이 모두 웃으며 지내는 그런 종교의 모습을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한 날. 부처님 오신 날. 세상이 자비로 충만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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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5-05-25 0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불교가 사유하는 종교인데....오늘날 불교는 거의 기복신앙급입니다.
절에 가면 대부분이 할머니 아줌마들....비나이다 비나이다 우리아들 취직 좀..우리 며느리 아들 낳게...서방님 사업 잘 되어 돈 벌게....우리 딸래미 시험 잘 보게...등등등의 신앙은 종교라기 보다는 저급한 샤머니즘이죠.
부처님이 사람의 심장을 바치면 다 이루게 해줄거다..라고했으면 어쩔뻔 햇을까나.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