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가 세월호였다 - 세월호 추모시집
고은 외 지음 / 실천문학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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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있으라"

 

이 기막힌 말, 살고 싶으면 가만히 있으라고... 움직이지 않아야 산다는 역설.

 

그러나 역설은 문학에서나 통하는 일. 현실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무릇 모든 생명은 움직여야 사는 법. 심장이 멈추면 죽고, 생각이 멈추면 죽음과 같고, 피가 멈추면 죽고, 우리의 움직임이 멈추면 우리는 죽는다.

 

생명은 가만히 있으면 안된다. 어떤 쪽으로든, 어떤 식으로든 움직여야 한다. 움직여야 산다. 이게 현실이다.

 

이런 현실에서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 그래야 산다고. 현실과 상상이 넘나드는 세계였다. 세월호는.

 

남들은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저들은 움직이는 역설. 너는 멈추고, 나는 활동한다. 고로 나는 산다. 이것이다.

 

남을 멈추게 하고 나만 움직여야 한다. 그러니 너희들은 가만히 있으라. 억울함, 진상규명, 우리가 해준다. 그러니 너희들은 가만히 있으라.

 

정치, 경제, 우리가 한다. 우리가 알아서 한다. 너희들은 그냥 가만히 있으라. 너희들이 움직이면 나라가 위험하다. 나라가 멈춘다. 하니, 가만히 있으라.

 

만물이 생동하는 봄, 그 무엇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이 봄에, 가만히 있으란다. 모든 것을 남들의 손에 맡기란다. 남들의 말에만 따르란다.

 

뽀록뽀록 새순이 돋고, 꽃들이 피고, 바람이 생명의 움직임을 자극하는데, 하늘의 비도 이제는 움직이라고, 겨우내 멈춰있던 생명들을 재촉하는데, 유독 그 배 위에서만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

 

아니 유독 그 배만이 아니다. 세월호라는 우리나라도 역시 가만히 있으라고 한다. 그것은 너희들이 할 일이 아니라고. 오로지 우리들만이 할 수 있다고, 우리가 해주겠다고. 우리 말만 들으면 너희들은 살 수 있다고.

 

무슨 상상의 세계인가? 문학인가? 이런 허구가 난무하다니. 학창시절에 시를 너무도 잘 배워, 오로지 시에 관한 문제에서는 틀리지 않기 위해 모순어법, 역설법을 달달 외웠던 것이 현실과 상상을 구분하지 못하고, 가만 있으라고, 그래야 산다고...

 

현실은 그렇지 않았는데... 모두를 수장시켜 버리고 자신들은 살아나온, 자신들만 가만 있지 않았던, 그런 사람들...

 

세월호 1주기.

 

가만히 있으면 죽음만이 있을 뿐이라고, 우리나라라는 세월호 역시 우리를 가만히 있으라고 하지만, 우리는 가만히 있으면 안된다는 점을 알려준, 꽃같은 생명들의 희생으로 움직여야만 산다는 것을 보여준, 그런 사건.

 

그렇다. 우리는 가만히 있으면 안된다. 그들이 아무리 "가만히 있으라!"고 해도 우리는 "절대로" 가만히 있으면 안된다.

 

그것이 우리가 살 길이다. 그 길을 세월호가 생명들을 통해 알려주었다. 절대로 가만히 있지 말라고.

 

세월호 추모시집인 이 시집을 읽으며 착잡했다. 마음이 아팠다.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내 생명을, 내 삶을 다른 사람의 말에 맡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게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일이고, 우리나라가 세월호가 되지 않게 하는 길이라고...

 

이 시집에 나온 한 편의 시. 제발 우리가 제대로 이름을 부를 수 있기를. 말 그대로 이름값을 하게 되기를. 공자의 말대로 제대로 이름을 붙이게 되기를...

 

부를 수 없는 것들이 많아졌다

    4월 16일 이후

                                            - 박찬세

 

 

선원을 선원이라 부를 수 없게 되었다

 

선장을 선장이라 부를 수 없게 되었다

 

사장을 사장이라 부를 수 없게 되었다

 

해경을 해경이라 부를 수 없게 되었다

 

장관을 장관이라 부를 수 없게 되었다

 

총리를 총리라 부를 수 없게 되었다

 

대통령을 대통령이라 부를 수 없게 되었다

 

대한민국을 대한민국이라 부를 수 없게 되었다

 

배를 배라고 부를 수 없게 되었다

 

바다를 바다라 부를 수 없게 되었다

 

파도를 파도라 부를 수 없게 되었다

 

무엇보다, 너희들을

 

꽃 같은 너희들의 이름을 부를 수 없게 되었다

 

고은 외 68인, 우리 모두가 세월호였다, 실천문학사, 2014년 1판 2쇄. 77-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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