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면서 사람들에 대해 생각할 때가 있다.

 

스핑크스의 질문처럼 네 발, 두 발, 세 발의 단계를 거치는지 사람들도 자신들이 세상에 나서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떠한 단계들을 거치게 된다.

 

남에게 의존하며 살던 시기... 이 때 가장 의존하는 대상은 부모이고, 부모 덕에 온전한 인간으로 성장하게 된다. 두 발 시기... 이 시기는 온전한 내가 온전하지 않은 대상을 온전하게 돌보아주는 시기다. 그런 시기에는 참으로 할 일이 많다.

 

이 때 할 일을 하지 않으면... 세상은 어지러워진다.

 

세 발 시기... 머리로는 무엇을 하지 못할까마는 몸이 따라주지 않는 시기다. 이 시기에는 사실 물러나 남에게 조언을 하면 좋은데... 아직도 장년의 몸을 잊지 못해 제 머리를 몸이 받쳐 줄 것이라 생각해 앞에 나서는 사람들이 많다.

 

나이 먹었으나 앞에 나서는 사람들이 많을 때 그 사회는 엉뚱한 곳으로 흘러간다. 앞으로 가지 않고 뒤로 갈 때가 더 많다.

 

앞길을 가야 할 청년들의 발목을 잡는 경우가 많다. 자신들이 길을 비켜주어야 하는데, 제 속도도 내지 못하고, 젊은이들의 속도에는 더욱 미치지 못하면서 좁은 길을 막고 가는 사람들이 많으면 사회는 너무도 빨리 늙어버린다.

 

늙어버린 사회, 미래가 없다. 미래에 살아야 할 청년들이 미래에 도달하지 못하고 현재에 머물면서 과거를 돌아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이 먹은 사람들, 청년들을 보아야 한다. 자신이 삶을 보는 것이 아니라...

 

기준을 자신으로 잡지 않고, 자신의 몸에 맞는 일을 하면서, 청년들이 그 몸에 맞는 일을 더 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청년들이 더 미래를 향해 갈 수 있도록 밑받침이 되어주어야 한다. 걸림돌이 아니라.

 

걸림돌이 된 어른들, 그런 정치인들, 오로지 제 잇속만을 챙기는 그런 늙은 정치인들. 늙음이 꼭 육체적인 나이만이 아님을, 정신이 늙어서 새 세상을 꿈꾸지 못하는 늙은 정치인이 많음을, 그들의 나라에서 청년들은 허덕거리고 있음을...

 

반성해야 한다. 이렇게 78년에 쓰여진 시를 또 읽으며 '부끄럽다'고 외치지 않아야 한다. 신경림의 "새재"를 헌책방에서 구했다.

 

사실 헌책방에서 이런 시집을 만나면 망설일 여지가 없다. 무조건 손에 들고 본다. 이제 이 시집은 나와 함께 하리라.

 

시는 묵을수록 젊어질 수도 있음을.. 내 육체의 늙어감과 내 정신의 무뎌감을 시가 다시 벼려 줄 수 있음을, 이 시집을 읽으며 다시금 깨닫고 있다.

 

나는 부끄러웠다 어린 누이야

 

자고 누운 네 방에 낡은 옷가지들

라면봉지와 쭈그러진 냄비

나는 부끄러웠다 어린 누이야

너희들의 힘으로 살쪄가는 거리

너희들의 땀으로 기름져가는 도시

오히려 그것들이 너희들을 조롱하고

오직 가난만이 죄악이라 협박할 때

나는 부끄러웠다 어린 누이야

벚꽃이 활짝 핀 공장 담벽 안

후지레한 초록색 작업복에 감겨

꿈 대신 분노의 눈물을 삼킬 때

나는 부끄러웠다 어린 누이야

투박한 손마디에 얼룩진 기름때

빛 바랜 네 얼굴에 생활의 흠집

야윈 어깨에 맨 삶의 어려움

나는 부끄러웠다 어린 누이야

 

나는 부끄러웠다 어린 누이야

우리들 두려워 얼굴 숙이고

시골 장바닥 뒷골목에 처박혀

그 한 겨우내 술놀음 허송 속에

네 울부짖음만이 온 마을을 덮었을 때

들을 메우고 산과 하늘에 넘칠 때

쓰러지고 짓밟히고 다시 일어설 때

네 투박한 손에 힘을 보았을 때

네 빛 바랜 얼굴에 참삶을 보았을 때

네 야윈 어깨에 꿈을 보았을 때

나는 부끄러웠다 어린 누이야

네 울부짖음 속에 내일을 보았을 때

네 노래 속에 빛을 보았을 때

 

신경림. 새재. 창작과비평사. 1999년 개정 6쇄. 40-41쪽.

 

이런 부끄러움에 대한 토로, 이제는 해서는 안 된다. 누이로 대표되는 청년들 앞길을 우리가 막아서는 안된다. 다시는 그들이 힘들게 살아가지 않게 해야 한다.

 

청년실업이 유례가 없을 정도로 심해지는 이 때, 청년들이 앞길에 대해서 꿈꾸기 힘든 이 때, 70년대 자신의 희생으로 우리 사회를 일구어 온 청년들에게 미안함을, 부끄러움을 토로했던 이 시가, 이제는 청년들을 암흑의 구덩이로 몰고 있는 우리들에 대한 이야기로 또 다시 다가오지 않는지.

 

이 시집에 실린 장시 '새재'에 도대체 나라가 무엇인지, 부자라고 하는, 양반이라고 하는 지배층들은 민중에게 어떤 의미인지, 왜 그들이 들고 일어설 수밖에 없었는지 너무도 생생하게 잘 나와 있는데...

 

역사를 반복하게 하지 않는 책임, 그것이 바로 어른들의 몫 아니던가. 다시는 부끄럽다는 말을,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몸에 맞는 일을 어른들부터 해야 하지 않겠는가.

 

적어도 자신들이 굳게 쥐고 있는 기득권부터 조금씩 내려놓아야 하지 않겠는가. 있다는 사람부터, 정치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들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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