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아이 창비청소년문학 50
공선옥 외 지음, 박숙경 엮음 / 창비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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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면 소설이지 '청소년 소설'이라는 말에는 나는 조금 거부감을 지니고 있다. 예전에 소설이 연령별로 대상을 정해놓고 쓰지 않았듯이, 정말로 좋은 소설은 연령을 가리지 않고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요즘은 '청소년 소설'이라는 갈래가 하나의 갈래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기술이 분화되어 각 전문 분야로 축소되어 자신들의 영역이 아니면 잘 알 수 없듯이 소설도 어른의 영역과 청소년의 영역, 그리고 동화라고 아이들의 영역으로 나뉘고 있나 보다.

 

어른들보다 더 바쁜 청소년들에게 숨통을 틔어주기 위해서 '청소년 소설'이라는 갈래가 자리를 잡고 있다는 생각을 하기로 마음을 먹으니, 이제는 '청소년 소설'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도 생각도 다 다른 사람들에게 우선은 자신들에게 가장 가까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문학의 세계로 이끄는 한 방법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이해할 수도 없는 동떨어진 이야기는 문학에 흥미만 떨어뜨리게 되니, 청소년들이 생각하고 경험하고 고민하는 모습을 소설로 형상화시켜 내는 작업은 문학을 위해서도 청소년을 위해서도 좋다는 생각으로 방향을 돌렸다.

 

창비에서 청소년 소설 50호 기념으로 낸 책이다. '청소년 소설'이라고 하지만 이 소설집의 연령대는 중학생에 맞춰져 있다

 

고등학생은 어느 정도 어른으로 대접을 받고 있으며, 또 그들이 학교에서 공부하는 문학은 어른들의 문학과 그다지 다르지 않지만, 질풍노도의 시기에 '중2병'이라는 새로운 말까지 만들어낸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소설은 그리 많지도 않고 또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총7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하나하나 모두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때로는 싱긋 웃으며, 때로는 그 심각함에 가슴 저리며...때로는 이렇게 환상소설로 쓸 수도 있구나 하면서, 어라 청소년 소설인데, 사회현실에 대입해도 무리가 없네 하면서...

 

'아무도 모르게' 달라진 자신을 보게 되는 아이로부터 소설은 시작된다.

 

물론 작가가 다르고 내용도 다르지만 이 소설들의 공통점은 중학생 정도 되는 아이들이 겪게 되는 일과 그들이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일, 또 그들이 고민하면서 나아가야 할 길들이 나타난다는 점이다.

 

어느 새 부쩍 성장해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데, 그 성장에는 반드시 어려움이 따른다. 어려움 속에서 허덕이고 있었다고 보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 의식하지 못한 채 성장해 있는 자신을 보게 되는 것, 그것은 '파란 아이'로 연결이 되기도 한다.

 

여기에 안데르센의 '성냥팔이 소녀'의 현대판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화갑소녀전'은 정말 우리 청소년들이 처해 있는 암울한 현실을 드러내고 있다. 어떻게 할 수 없이 종말로 끌려갈 수밖에 없는 화갑소녀를 보면서, 출구도 없이 그냥 그렇게 제 삶을 소진하고 있는 청소년들의 모습이 떠올라 너무도 마음이 아려왔다고나 할까.

 

'고양이의 날' '졸업'은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야 함을, 나아가지 않음은 결국 자신을 잃어버림을 고양이라는 우의를 통하여, 또 수몰지구에서 온 아이들이 다시 떠나가는 모습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대학교를 졸업해도 스스로 독립하지 못하고 부모에 매여 사는 캥커루족들이 난무하는 시대이긴 하지만, 중학생이라는 나이는 이제 자신을 깨닫고 부모로부터 독립해 나갈 준비를 하는 단계이다.

 

이 단계에서 준비를 제대로 못하고 정신적으로라도 독립하지 못하면 그것은 자신의 삶을 온전하게 살기 힘들다. 그런 점을 '떠나야 할 때 떠나야 함'을 이 두 소설은 잘 보여주고 있다.

 

'덩어리'는 읽을수록 마음이 아프다. 덩어리, 개체들의 집합이 아니라 덩어리가 개체들을 규정하고 지배하는 상태. 결국 개체들은 독립성을 읽고 덩어리로서만 존재하고, 덩어리에서 떨어져 나가려는 움직임을 덩어리들이 막아버리는 상태.

 

학교. 어쩌면 이것은 어른들의 사회에도 적용이 되고, 이 덩어리가 가장 극명하게 발현되는 것이 파시즘이나 전체주의겠는데...

 

'우리는 하나!'라는 구호로 어쩌면 우리는 개인의 독창성을 무력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두가 함께 하는 말이 폭력이 될 수 있음을, 이 소설을 통해서 통렬히 깨닫게 된다.

 

이렇게 중학생 시기, 정말로 '중2병'이 확산되는 시기,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시기를 배경으로 소설들이 창작되었지만, 이 소설들에선 해답이 있다. 당연하다. 세상에 해답이 없는 문제는 없다. 다만, 얼마나 시간이 걸리느냐가 문제겠지만.

 

이 소설집에서 유일하게 웃음이 배어나오게 하는 소설, 이렇게 심각한 갈등을 웃음으로 풀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 소설은 '푸른파 피망'이다.

 

전쟁이라는 극한의 갈등 속에서 웃음을 유발하는 해결책, 웰컴 투 동막골'이라는 영화에서 영도력을 묻는 인민군 장교에게 이장이 해준 말. '잘 먹이면 돼.'

 

먹는 것, 인간의 가장 기초적인 생의 욕구이고, 생의 충족이다. 전쟁도 어쩌지 못한 먹을 것에 대한 욕구, 그리고 멀을거리로 통합되는 사람들... 유쾌하다. 이 '푸른파 피망'은.

 

한 편 한 편 따로 따로 읽고 즐기면 되는 소설들이다. 의미가 무엇일지 고민하기보다는 그냥 읽고 즐기자. 즐기는 사이에 의미는 마음 속으로 파고든다. 그러면 된다.

 

소설이 해야 할 첫번째 역할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즐겁게 해야 한다는 것. 이 소설집은 그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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