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연 : 깊은 못
깊은 연못이라면 속이 보이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시인은 '속이 보이는 심연으로'라고 했다.
본래 보이지 않아야 할 심연을 보이게 한다? 무엇일까? 이 심연이라는 말은 자연 그대로의 깊은 연못이 아님은 분명하다.
속이 보이는 연못은 그다지 깊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연에서 심연은 속이 보이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이 심연을 사람이 사는 사회로 비유를 하면 어떻게 될까? 속이 보이지 않는 연못처럼 깊디깊어 도저히 볼 수 없을 때 그 사회가 건강할까?
우리는 흔히 투명사회라는 말을 많이 쓴다. 투명하다는 것, 물이 맑아 속이 보이는 것과 같아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는 '속이 보이는 심연'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어야 한다.
그런데... 과연 그런가?
이 질문에 '그렇다!'고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작년 봄부터 우리는 온갖 어둠 속에서, 심연 속에서 살아오지 않았던가.
무언가가 있단 생각만 하고 있는데, 무엇 하나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고, 아직도 오리무중, 심연 속에 가라앉아 있지 않은가.
아는 사람만 알고 다른 사람들은 절대로 알 수 없는 그런 심연. 우리는 지금 속이 보지이 않는 심연에서 살고 있지 않은가. 그런 사회에서 살고 있지 않은가. 그런 사회는 우리를 너무도 힘들게 하는데...
이런 사회의 특징은 말이 죽는다는 것이다. 말은 권력있는 자에게서만 나온다. 그들의 말들만 자유롭게 돌아다닌다. 그들의 말은 심연 속도 유유히 돌아다닐 수 있는 잠수함처럼 어려움 없이 자유자재로 존재한다.
그러나 힘없는 사람들의 말은 나오지 못한다. 그들의 말은 숨어든다. 자꾸만 자꾸만 어둠 속으로 심연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그들의 말이 물 밖으로 나오기 위해서는 얼마나 노력을 해야 하는지... 얼마나 어려움을 겪어야 하는지.
최하림의 이 시집은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인한 채무감과 자연에서 느끼는 충만함 사이에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시인이 고민했던 지점이 아직도 우리에게 남아 있다는 점이다.
에고... 시인은 '속이 보이는 심연으로'를 외쳤는데... 우리는 아직도 '속이 보이지 않는 심연' 속에서 헤매고 있다.
자, 말을 자유롭게 해서, 심연을 속이 보이게 만들자... 투명한 사회가 되게 해야겠다.
그의 시 중에서 '베드로 4'를 보자. 우리가 알고 있는 베드로에 관한 이야기를 상기하면서, 말의 중요성을 생각하면서...
베드로 4
캄캄한 시간 속
말들은 어디 있는가
퇴락한 사원의 돌더미 새에 있는가
잡초 속에 있는가
벼락 속에 있는가
말들은 어디 있는가
어느 마당에 있는가
최하림, 속이 보이는 심연으로, 문학과지성사. 1993년 3쇄. 52쪽
지금... 우리 말들은 어디 있을까? 그 말들이 우리를 속이 보이는 심연으로 인도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