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오년이 지나고, 을미년이 시작된 지 10여 일이 지났다.
왜 우리 기억에 갑오년이 남아 있을까? 그것은 바로 동학혁명 때문이다. 이름 가지고 여러 말들이 많지만, 내 기억 속에 있는 동학혁명으로 하자.
그것은 분명 혁명이었다. 비록 성공하지 못한 혁명이지만, 농민들이 삶의 주체로, 정치의 주체로 나선 혁명이었다.
그런 혁명을 기리는 갑오년이었는데, 혁명은커녕 오히려 더 우리를 참담하게 만들었던 갑오년이 되고 말았다.
녹색평론 이번 호에서 최용탁은 그런 참담함을 이렇게 말한다.
'다시 참담한 갑오년이었다. 새삼 주워섬기기도 싫지만 올해 우리 농업에 몰아친 전면개방이라는 태풍은 확실하게 숨통을 끊겠다는 광기가 번뜩였다. 이 무지막지한 농업 죽이기 속에 위대한 갑오년은 치욕과 한숨의 갑오년으로 저물고 말았다. 김남주의 시 구절을 빌리자면, 아, 얼마나 음산한 갑오년이었던가. 아, 얼마나 계획적인 갑오년이었던가.' (211쪽)
생각하기도 싫은 일들이 벌어졌던 갑오년.
이번 호 제목이 "국가의 쇄신, 어떻게?"다. 나라를 쇄신하겠다던 갑오년 농민들의 함성이 잦아들고, 곧 멸망의 길로 치달을 을미년. 과거의 역사는 이랬다.
왜? 쇄신을 하지 못했으니까. 쇄신의 목소리를 억압하고, 가두고, 없애버렸으니까. 그래서 국가는 파멸의 길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는데...
역사를 반복시킬 것인가? 아니다. 갑오년에 우리는 국가를 쇄신할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온갖 사건 사고에 한없는 나락으로 떨어져가고 있었을 뿐이다. 한번 "와" 소리도 내지 못하고, 힘 한번 떨쳐보지 못하고, 온갖 소문 속에서, 온갖 사고 속에서 한 해를 보내고 말았을 뿐이다.
절망, 좌절, 그러나 역사는 반복해서는 안된다. 그래서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다. 다시는 비극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맑스의 말대로 다시 반복되는 비극은 비극이 아니라, 희극에 불과하다. 막을 수 있는 것을 막지 못했기에.
이번 호는 많은 것을 다루고 있다. 정치 혁신. 핵 문제. 스마트폰 문제.
그런데, 이것들이 다른 문제냐? 아니다. 하나로 연결이 된다. 핵 문제든 스마트폰 문제든 이들은 정치 혁신으로 귀결이 된다.
정치란 곧 우리 삶이기 때문에, 우리 삶을 혁신시키지 않으면 핵이나 스마트폰이 우리들의 몸과 마음을 갉아먹는 것을 막을 수가 없다.
정치가 곧 삶인데, 우리는 우리의 삶을 다른 사람들에게 맡기고 있다. 이것이 바로 대의제 민주주의다. 우리네 선거다. 선거가 끝난 뒤 과연 우리가 찍은('뽑은'이라고 할 수가 없다. 내가 찍은 사람이 뽑힌다는 보장도 없고, 또 그렇게 뽑힌 사람이 내 의사를 제대로 반영한다고 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과연 우리의 의사를 반영하고 있는가 생각하면 '아니다'라는 말이 나온다.
핵이 우리네 삶을 위협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지만, 정치권은 핵 문제에 관해서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고, 스마트폰이 아이들의 정신을 좀먹어 가고 있음을 알고 있지만, 경제를 살린다는 목적으로 또는 세계적인 정보통신강국이라는 명목으로 꼬마 아이들까지도 스마트폰과 함께 살고 있는 이 현실에 눈감고 있다.
이렇게 우리는 많은 문제들을 나를 대변해준다는 남에게 맡기고 있다. 그냥 맡기고 말 뿐이다. 그 다음은 없다. 그가 나를 제대로 대변해주지 않아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다음 선거를 기다리는 수밖에.
문제는 그 다음이다. 다음 선거에서 똑같은 일이 반복된다. 이렇게 반복된 정치현실이 무감각으로, 자포자기로 간다.
그 놈이 그 놈이고, 그 정당이 그 정당이고, 투표를 하나 안 하나 똑같다는 생각을 지니고, 그냥 그렇게, 그런가 보다 하면서 살아간다.
그게 아니다. 아니어야 한다. 그렇게 되어서는 안된다. 갑오년에 큰 소리 한번 내지 못한 우리들이 을미년을 또 이렇게 보내다간 우리는 파멸의 길로 내달리게 될 뿐이다.
하여 녹색평론은 이번 호에서 우리에게 경고를 보내고 있다. 우리 나라 쇄신하지 않으면, 우리는 역사를 반복하게 된다고.
국가 쇄신, 정치 쇄신에서 시작해야 하는데, 정치는 곧 삶이니, 내 삶을 되돌아보고, 내 삶을 고치고, 내가 주인임을 천명해야 한다고.
내가 주인이 될 때, 핵과 스마트폰은 우리가 통제할 수 있고, 우리를 대변해주는 누군가가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참여하는 정치가 되어야만 그것이 바로 진정한 주인이라고.
우리가 주인이 되어야 국가의 쇄신이 이루어진다고. 하여 이번 호의 여는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시민들 자신이 바로 '권위'라고 용기 있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야말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헌법 제1조 1항의 정신에 가장 잘 어울리는 자세일 것입니다.'(15쪽)
지금 우리는 기로에 서 있다. 내 삶을 남의 처분만 기다릴 것인가, 아니면 내 삶의 주체로 내 스스로 나설 것인가? 국가의 쇄신, 어떤 길을 택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갑오년을 보내고 맞는 을미년, 120년 전의 을미년이 되지 않도록, 내 삶의 주인이 되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