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어버리고 싶은 일들이 너무 많다.
세상이 왜 이렇게 돌아가는지.
마음은 답답하고, 무언가가 가슴에 콱 들어박힌 것 같은데...
그런데, 도대체 왜 이런 거야?
이제는 좋아져야 하는 것 아냐?
그게 발전이고 진보 아냐?
민주화 되었다고, 절차적 민주주의는 나름대로 정착되었다고 하는데, 도대체 무엇이 민주주의지.
힘없는 사람이 힘든 세상이 민주주의 사회인가? 그것은 아닌데... 많은 일들이 터지고 있는데, 명확하게 밝혀진 것이 하나도 없는 이 세상에, 그런 것들, 정말 쓸어버리고 싶다.
모두 쓸어버리고 다시 시작하고 싶다.
오래 된 시집을 뒤적이다가 "쓰르라미"라는 시를 발견했다. 이 쓰르라미에 발음이 비슷한 말들을 엮어서 시인이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있는 시.
강창민의 "물음표를 위하여"라는 시집에 실려 있는 시다.
쓰르라미
비가 내려도 울어쌌고
작년 늦봄부터
뭐가 그리도 싫은지, 싫어라미
왼종일 싫다고 울어댔제.
매운 6월
성난 광장마다 사람들이 모여
외침 낭자히 피 흘릴 제
무얼 쓸어라는지, 쓸어라미
아침부터 쓸라고만 소리쳤제.
올 여름 쓰르라미는
나무 꼭대기에 올라 앉아
무얼 새로 하라는지
칠 년 동안의 쌓인 울음을
뉘 들어라 울어쌌는지, 새로라미
누가 그 소리 귀에 담고 있노?
강창민, 물음표를 위하여, 문학과지성사, 1991년 2쇄. 53쪽.
절말 이렇게 외쳐댔던 그 많은 외침들이, 그 많은 소리들이 마음 속에 하나도 담기지 않고 다 날려가 버렸는지. 이 시의 마지막 구절이 마음에 와닿아 사라지지 않는다.
민주화 시대라는데, 왜 살기는 더 팍팍해지고 있는지... 이런 때 시인은 이렇게 자괴감을 표출한다. 물론 이 시는 80년대의 시라는 점을 명심할 것. 다만 시는 한 시대에서 머물지 않고, 시대를 넘어 계속 살아남는다는 것.
이 땅의 수많은 박사들, 이 시 한 번 읽어보면 어떨지... 하나라도 제대로 잘 박았으면, 그랬으면, 이렇게 많은 말들이 쌓이지 않고 사라지지는 않을텐데...
박사 이후
1
학위 축하해요, 강선생.
건배합시다, 쭈욱.
어이, 아가씨 박사가 뭔지 아나?
박는 데 도사라는 게야.
2
그게 아니다.
한 가지만 빼고는 잘 박지도 못한다.
그 한 가지도 결국 빼고
언제나 뺀다.
자유를 위해, 민주화를 위해
몸 박지 못하고
늘 뺀 채로
얼도 뺀 채로
이 가을을 맞는다.
강창민, 물음표를 위하여, 문학과지성사, 1991년 2쇄. 5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