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결에 시를 베다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226
손세실리아 지음 / 실천문학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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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스하다.

 

시에는 잘난 사람이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사회에서 밀쳐지고 떨쳐진 사람들이 나온다. 제주도 조천에 살고 있는 사람들, 외국에서 온 사람들, 시인들, 그리고 가족들...그들이 이 시에 나오는데, 이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마음이 따스해진다.

 

시집을 읽으며 이게 뭔 소리야 하지 않고, 내용이 머리 속에 쏙쏙 들어오고, 더불어 마음 역시 따스해진다.

 

그러나 가끔 이런 시들도 있다. 우리를 따스하게 해주고 있지만, 따끔하게 우리의 정신을 깨우는 시.

 

수능 정답 발표가 난 오늘. 수능과 관련지어 이 시를 읽어보면 도대체 "수능 대박 나세요"란 말을 함부로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60만 명이 넘는 학생 모두 대박이 나면 그것은 대박이 아니니...

 

명진스님 왈

 

요즘 절마다

합격기원 백일법회로 분주합니다

입시생 자녀를 둔 보살님들이

백배를 올리고 시주도 하는데요

그 지극함이 숙연하면서도

한편으론 딱하기도 합니다

한번 생각해봅시다

기도한 사람 자식만 합격시켜준다면

이거야말로 부정입학이며

특혜 아니겠습니까

이런 말도 안 되는 소원을 들어달라니

부처님도 참 폭폭할 노릇일 겝니다

 

손세실리아, 꿈결에 시를 베다. 실천문학사. 2014년. 72쪽

 

이 시집. 첫장을 펼치자 다른 쪽으로 넘어가지 못하게 나를 잡는 시가 있다. 아니 첫시가 나를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여기서 끝이다. 여기서 시작이다. 바로 이것이 이 시집이다. 너무도 짠한... 마음 속에 그림이 그려지는... 더불어 다른 시까지 연상시키는... 흑백으로 떠오르는 그림.

 

진경(珍景)

 

북한산 백화사 굽잇길

오랜 노역으로 활처럼 휜 등

명아주 지팡이에 떠받치고

무쇠 걸음 중인 노파 뒤를

발목 잘린 유기견이

묵묵히 따르고 있습니다

 

가쁜 생의 고비

혼자 건너게 할 수 없다며

눈에 밟힌다며

 

절룩절룩

쩔뚝쩔뚝

 

손세실리아, 꿈결에 시를 베다. 실천문학사. 2014년. 11쪽

 

이 시를 읽으면서 한 편의 동양화가 떠올랐으니, 특정한 화가가 그린 동양화가 아니라 그냥 동양화처럼 수수하고 무언가를 끌어당기는 맛을 지닌 그런 그림이 떠올랐다고나 할까.

 

김종삼의 묵화란 시가 떠오르고, 두 시가 하나의 그림으로 겹쳐지는 상상.

 

   묵화(墨畵)

               - 김종삼

 

물 먹는 소 목덜미에

할머니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보라. 세상의 신산을 모두 겪고 서로 의지하면서 살아가는 그래서 세상을 견딜 수 있는 그런 모습.

 

이런 모습이 우리를 따스하게 한다. 정말로 세상이 살만한 세상이 되는 것은 이렇게 서로 힘든 존재들끼리 어깨를 겯고 함께 할 때다.

 

할머니를 따라가는 유기견이나 힘들게 일한 소에게 손을 얹는 할머니... 이 두 그림은 다르지 않다. 이 그림은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내 마음을 따스하게 한다. 그래서 세상의 온도가 조금은 더 올라간다.

 

이거면 됐다. 이 시집은 이 시 하나로도 날 편안하게 한다. 날 따스하게 한다. 다른 시들을 읽어도 역시 마음이 편안해지고 따스해지기는 하지만...

 

그래, 가을이 깊어 겨울로 접어들고 있다. 아니, 세상은 겨울이다. 이 겨울에 마음의 온도를 높이는 시. 이런 시를 읽어 보자.

 

우리에게 따스한 온기를 전해주는 손세실리아의 시.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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