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의 목소리 - 그림이 들려주는 슬프고 에로틱한 이야기
사이드 지음, 이동준 옮김 / 아트북스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독특한 발상이다. 그림의 목소리라니.

 

마치 시인들이 시가 내게로 다가왔다고 말하고 있는 듯한 느낌.

 

그런데 지은이가 미술학자가 아니다. 화가도 아니다. 그는 시인이다. 그래, 그래서 그림이 말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구나.

 

2부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는 그림이 말하다. 또 하나는 화가가 말하다.

 

그림이 말하다. 그림을 보면서 그림이 말하는 소리를 듣는다. 화가가 말하다. 그림을 보면서 그 그림을 그릴 때 화가의 마음을 듣는다. 화가의 독백을 듣는다.  

 

그림은 그냥 존재하지 않는다. 무언가 끊임없이 우리에게 이야기를 한다. 하다못해 돌멩이도 침묵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하는데.

 

그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귀, 그것은 마음에서부터 시작한다. 마음을 열고 그림을 보아야 한다. 그림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온 정신을, 온 마음을 집중해서 들어야 한다. 들으려고 해야 한다. 그래야 들린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지만 우리가 잃어버린 지혜, 듣기'

 

귀는 있으되, 듣지 못하는 귀가 많은 지금, 들리지 않는 소리까지도, 말해지지 않은 소리까지도, 어쩌면 그림으로 표현된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진 사람은 너무도 드문 세상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책이 귀하다. 침묵에만 머무르고 있는 듯한 그림이 말하는 소리를 들려주고 있으니.

 

하지만 그림이 과연 침묵에만 머무르고만 있을까? 아니다. 그림은 그려지는 순간 이미 우리에게 무슨 말을 하고 있다. 화가가 말하든, 그림이 말하든 그림에는 이야기가 있다. 소리가 있다.

 

그 소리를 찾을 수 있는 귀. 그 소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 그것이 필요한 세상이다.

 

처음엔 그냥 작가의 상상력에만 의존한 책이겠구나 했다가, "그림이 말해주지 않은 것"이라는 글이 그림과 이야기 뒤에 딸려 있는데, 이 설명이 그림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그냥 상상이 아니라 사실에 바탕한 상상, 즉 있음 직한 일을 상상해 내고, 그 상상을 이야기로 풀어내고 있다고 깨닫게 되었다.

 

상상이 아무 데서나 나오는 것이 아닌 철저한 사실을 바탕으로 그 사실을 넘어서는 곳에 존재함을 다시 인식하게 했다고나 할까.

 

침묵을 지키는 듯한 그림도 제 소리를 지니고 있고,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는귀를 지닌 사람들, 마음을 지닌 사람들이 있는데...

 

세상 밖으로 나와 있는 많은 소리들을 억지로 듣지 않으려는 사람들도 있으니, 남들에게 너무도 자명하게 들리는 소리를 애써 외면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반성할지어다.

 

소리는 막는다고 없어지지 않고, 소리는 없는 듯하지만 어디서나 존재하니, 그 소리들을 들을 수 있는 열린 마음, 열린 귀를 지녀야 한다.

 

그림 앞에서 그림의 소리를 들어도 좋다. 이렇게 그림의 소리도 들을 수 있는 사람, 세상의 소리들, 그 많은 소리들을 안 들을 수 없겠지.

 

열린 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말하기가 아니라 듣기"임을 다시 생각하게 해준 책이었다. 덕분에 눈도 호사했지만, 새롭게 귀를 인식하게 해준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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