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시성이라고 불리는 두보의 시 중 한 구절이 머리 속에서 맴돌았다.

 

'춘망'이라는 시의 첫구절.

 

'국파산하재(國破山河在)' - 나라는 망했어도 산하는 존재한다 정도로 해석되는 말. 국가의 흥망성쇠와는 상관없이 자연은 그대로 존재한다는 말로 이해하면 될 듯하고, 이 시와 더불어 야은 길재의 시조도 연결이 되는데...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없다 /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여기서 두 번째 중장의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없다는 구절이 두보의 국파산하재와 통한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은 순간적인 삶을 살고, 인간이 만든 나라도 영원하지 않고 생명이 있는데, 자연은 그와 반대로 영원히 존재한다는 말일텐데...

 

인천 아시안게임과 또 다른 뉴스 방송을 보다가 너무도 놀란 것이 강인데, 그 강이 직선으로 아주 반듯하게 정리되어 있는 것이었다.

 

강이 직선이라?

 

강은 곡선이어야 하지 않나? 이 때 곡선이 강이 유연하게 휘게 정비하라는 말이 아니라, 강 가의 곳곳이 드나듦이 있어서 온갖 생명체들이 그곳에 머물 수 있어야 하는데...그렇지 못했다는 말이다.

 

이렇게 정비된 강에서 어떤 생명체가 살 수 있을까? 생명체가 살지 못하는 강이 강이라고 할 수 있을까?

 

또 4대강은 녹조로 녹조라떼라는 별명까지 얻었다는데... 나라는 망해도 산하는 영원해야 하는데, 우리는 거꾸로 나라는 멀쩡한데 산하를 망하게 하고 있지는 않은지.

 

가만히 내버려 두면 더 좋을 산하를 인위적인 힘으로 변형시키려 해서 결국 산하를 망가뜨리고 있으니, 산천도 망하고 인걸도 없는 그런 상태로 변하지 않았나 싶다.

 

천혜의 자연이라는, 금수강산이라는 우리나라를 위에서 내려다보면 강은 인공적인 냄새가 너무 풀풀 나고, 푸른 산들은 하나둘 깎여나가 이제는 고층빌딩들이 숲을 대신하고 있으며, 자연스레 만들어졌던 길들이 온갖 인공적인 도로로 덮여버린 세상.

 

산하를 이렇게 파괴하고도 어떻게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지...

 

아름다운 옛시절이라고 하던데...비록 가난했지만 자연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던 시대가 있었는데, 경제적으로 엄청난 성장을 이루었다고 하지만, 그 댓가가 자연 파괴라면 그게 무슨 소용이겠는지...

 

심호택의 "하늘밥도둑"이라는 시를 읽고 싶어졌다. 반듯반듯한, 녹색으로 뒤덮힌 강물의 영상에 충격을 받았기 때문에... 아름다운 옛날을 노래한...그래서 더욱 현재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그 시집을...

 

두보나 길재의 시가 앞뒤가 바뀐 지금... 다시 바로잡아야지. 순간이 영원을 뒤집으면 안되지. 영원에 맞춰 순간을 살아가야지. 

 

그의 시집에 나온 두 시... 마음이 짠하다.

 

그만큼 행복한 날이

 

그만큼 행복한 날이

다시는 없으니

싸리빗자루 둘러메고

살금살금 잠자리 쫓다가

얼굴이 발갛게 익어 들어오던 날

여기저기 찾아보아도

먹을 것 없던 날

 

심호택. 하늘밥도둑. 창작과비평사, 1996년 초판 7쇄. 8쪽

 

하늘밥도둑

 

망나니가 아닐 수야 없지

날개까지 돋친 놈이

멀쩡한 놈이

공연히 남의 집 곡식줄기나 분지르고 다니니

이름도 어디서 순 건달 이름이다만

괜찮다 요샛날은

밥도둑쯤은 별것도 아니란다

우리들 한 뜨락의 작은 벗이었으니

땅강아지, 만나면 예처럼 불러주련만

너는 도대체 어디 있는 거냐?

살아보자고, 우리들 타고난 대로

살아갈 희망은 있다고

그 막막한 아침 모래밭 네가 헤쳐갔듯이

나 또한 긴 한세월을 건너왔다만

너는 왜 아무데도 보이지 않는 거냐?

하늘밥도둑아 얼굴 좀 보자

세상에 벼라별 도적놈 각종으로 생겨나서

너는 이제 이름도 꺼내지 못하리

나와보면 안단다

부끄러워 말고 나오너라

 

심호택. 하늘밥도둑. 창작과비평사, 1996년 초판 7쇄. 12-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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