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한 신비
버트 헬링거 지음, 박이호 옮김 / 고요아침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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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당연한 신비"다.

 

신비란 당연하지 않음에서 오는데, 당연하지 않음을 당연하다고 표현하고 있다.

 

우리가 영혼에 대하여 존재한다 존재하지 않는다 서로 다른 이야기들을 하는데, 헬링거는 이러한 영혼에 대한 이야기는 영혼의 신비에 대한 이야기이고, 이것은 우리에게 당연한 일이라는 것이다.

 

영혼을 믿으면 행복하다고 했는데, 이 영혼을 정신이라고 하든, 신이라도 하든, 그의 글들을 읽어가다보면 세상을 막 살 수는 없음을 알게 된다.

 

어떻게 살든지, 우리는 정신의 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또 다른 사람의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드라망이라는 말이 생각날 정도로 옳고 그름, 위와 아래 등 서로 함께 할 수 없는 것조차도 함께 하고 있음을 헬링거는 강조하고 있다.

 

그의 말을 보자.

 

스스로 홀로는, 스스로에 빠져 있는 것과는 정반대입니다. 자주적인 사람은 영적인 정신의 움직임들과 공명에 머물기에 다른 자주적인 사람들뿐 아니라 그들의 생각, 행동과 공명에 머뭅니다. 이게 바로 원래의 사랑입니다. 영적인 사랑입니다. 72쪽

 

나는 독립된 주체이지만, 남들 역시 독립된 주체이기에, 이들은 라이프니츠의 창이 없는 단자가 아니라 서로 창이 열린, 상호 소통하는 단자라는 얘기다.

 

바로 우리들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공동체는 스스로 선 홀로들이 함께 모여 서로 공명하기 때문이다. 이런 공명은 동의에서 온다. 그의 말을 보자.

 

우선 우리 내면에서 경험된 인정과 사랑 다음에 밖으로 향하는 동의가 옵니다. 다른 사람과 다른 것이 나와 함께 움직이는 진동 다음에 동의가 옵니다. 이 진동에서 그들로부터 어떤 것이 내게, 나로부터 어떤 것이 그들께 더해집니다. 77쪽

 

 

이런 공동체의 모습이 그려지지 않는가. 아주 신비로운 모습이기는 하지만, 우리 인간 세상에서는 당연해야 하지 않는가.

 

개인이 영적인 움직임과 함께 할 때 그는 '영적인 정신의 움직임들과 공명에서 생각하는 사람은 스스로 홀로 생각'(71쪽)한다고 한다.

 

홀로이되 홀로이지 않음. 이런 상태에 머물기 위해서는 우리는 위로만 올라가려는 지향성을 버려야 한다.

 

보통인 사람들과 함께 함. 그 속에서 영적인 함께 함이 가능하고, 이것이 바로 공명이고 동의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아래에 머물러야만, 우리는 영적인 정신과 함께 갈 수 있습니다. 오직 아래에서야 우리는 영적인 정신의 움직임들과 인식된 공명에 머뭅니다.'(55쪽)

 

이런 공명, 동의는 먼 미래에 오지 않는다. 과거에만 존재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지금-여기에 존재한다.

 

영화된 정신의 움직임들과 공명에 오는 우리에게는 모든 것이 지금 존재합니다. 오직 지금에만 우리는 그 정신과 공명에 있습니다. 오직 지금에만 우리는 그 정신 안에서 지난 것과 연결돼 있습니다. (232쪽)

 

하여 이는 전체적인 사람을 향하게 된다. 우리는 전인적 인간을 추구하고, 그런 전인적 인간이 바로 우리가 만나야 할 인간들 아니겠는가. 이런 인간들의 만남. 이것은 전체를 추구할 수밖에 없다. 전체를 향한 영원한 움직임. 이것이 바로 이 책이 말하는 핵심이 아닐까 한다.

 

모든 홀로는 전체를 향해 길에 있습니다. ... 우리는 전체의 길을 가야 합니다. ... 우리는 우리가 가는대로 우리 몫의 길을 갑니다. ...오는 대로의 전체에게, 오는 대로 동의가 전체 사랑입니다.(247-248쪽)

 

홀로이자 홀로이지 않은 인간. 그런 인간의 신비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하게 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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