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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석의 한국의 美 특강
오주석 지음 / 솔출판사 / 200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는 반 만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역사가 오래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전통이 오래되었다는 얘기가 되고, 전통이 있다는 얘기는 문화가 남아 있다는 얘기가 된다.
세계적으로 군사적인 힘보다는 문화적인 힘이 강한 나라가 오래 존재했고, 그런 나라가 세계를 이끌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반 만년의 역사를 자랑하면서도 제 나라 문화에 대해서 무심하게 넘어가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만든 책이다.
백범은 우리나라가 문화의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문화라는 말, 참 좋은 말이다. 그만큼 힘든 말이기도 하고.
문화는 갑자기 하늘에서 똑 떨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외국에서 직수입한다고 해서 문화강국이 되지 않는다.
문화는 자신들이 예전부터 만들어왔던 것을 현대에 맞게 변용하면서 지켜갈 때 제 역할을 한다. 이를 법고창신(法故創新)이라고 한다.
법고창신을 하기 위해서는 알아야 한다. 알아야 무엇을 변용하든 말든 할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우리나라 교육을 생각해 보라. 우리 문화에 대해서 과연 제대로 교육을 하는가.
잘 되면 제 탓이요, 못 되면 남 탓이라는 속담이 있지만, 거기에 해당하는지도 모르겠지만, 학교 다니던 십여 년 동안 미술 교육을 받았음에도 우리 전통 미술에 대해서 제대로 배웠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겠다.
옛날 그림의 종류, 수묵화, 산수화, 진경산수화 등과 유명한 사람들의 그림 제목과 이름은 배웠지만, 그 그림을 어떻게 감상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배우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 외웠던 기억만 있으니, 학교 교육이 우리 옛그림들에 대해서 제대로 또는 즐기며 감상하는데 걸림돌로 작용했다는 생각만 든다.
하여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가서도 우리 옛그림들을 제대로 감사하지 못하고, 교과서에서 보았던 그림들만 스윽 훑고 지나가고 만다. 그렇지 않으면 국보, 보물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있는 그림들만 스쳐지나가듯, 또는 숙제를 하듯, 아니면 한 번 보았다고 자위를 하는 태도로 보고만 만다.
그러니 우리 그림들이 왜 훌륭한지, 얼마나 훌륭한지를 알지 못하게 된다. 그냥 옛날 그림일 뿐이고, 남이 좋다고 하니 좋을 뿐이다.
그런데 이 책, 옛날 그림을 읽고 보고 감상하는 법에 대해서 보여주고 있다. 옛그림에 대해서 세세하게 설명을 해주고 있다.
이 그림에 이런 뜻이 있었구나, 이래서 이 그림이 좋다는 것이구나, 이 그림엔 우리 조상들의 이런 정신이 들어 있었구나 하고 깨닫게 만들어 주고 있다.
이런 세세한 설명보다도 이 책의 장점은 우리 옛그림을 보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는 데 있다.
학교에서는 배우지 않았던 우리 옛그림을 보는 기본 태도를 알려주고 있으니, 이 책은 그것만으로도 됐다.
세 가지 기본 태도를 이야기한다.
우선 그림을 보는 거리... 이 책에서 말하고 있듯이 정말로 우리는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가면 거의 모든 그림을 똑같은 거리를 두고 비슷한 속도로 보고 지나간다. 마치 표를 끊듯이 줄 서서 나란히 나란히 속도에 맞춰 지나가는 것이다.
핑계를 대자면 미술관, 박물관에 갔을 때 너무도 많은 사람 때문에 자신만의 감상을 하지 못하고, 물결에 휩쓸리듯 지나칠 수밖에 없다는 환경적 조건도 있지만, 제대로 감상하는 법을 몰라서 그랬기도 했다.
그림을 보는 거리... 작품을 대각선으로 긋고, 그 거리나 또는 그 거리의 1.5배 정도의 거리에서 보라는 말. 작은 그림은 가까이서, 큰 그림은 멀리서... 얼핏 당연한 말처럼 들리지만, 이거 참 지키기 힘들다.
몇 미터에 달하는 큰 그림이 벽에 전시되어 있지 않고, 밑에 유리 상자에 들어 있는 경우 가까이서 순서대로 볼 수밖에 없다. 작품을 한 눈에 감상하지 못하는 한계는 전시 상태에 따라서도 생길 수 있지만, 그래도 그렇게 거리를 두고 보려는 노력을 하라는 말은 좋다.
작품을 잘 볼 수 있는 거리가 있다는 것. 미술교육에서 정말로 필요한 일이다. 이미 배웠는데 잊어버리고 말았는지는 모르지만.
두 번째는 그림을 보는 순서.
지금은 가로쓰기를 하고 있지만, 우리 조상들은 세로쓰기를 했다는 사실. 이것은 우리 조상들의 시선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향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그렇다면 옛그림은 오른쪽 위에서 왼쪽 밑으로 보아야 한다는 말. 그렇다. 가로쓰기에 익숙해져서 습관적으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그림을 보는데 이는 서양식 감상법이고, 우리 옛그림은 반대로 감상을 해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고 한다. 그림도 한 눈에 들어오고.
세 번째는 그림을 보는 시간.
모든 그림을 비슷한 시간에 보지 말라는 얘기. 정말로 그림을 즐긴다면 그 그림 앞에서 몇 시간이고 있을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아는 것이 즐기는 것만 못하다는 말이 있듯이 그 그림의 의미를 알기보다는 그 그림을 즐기면서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이 더 좋다는 얘기다. 그런 그림이 있다면 그림을 보는 즐거움에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그림 앞에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 세 가지 원칙으로 김홍도의 그림부터 동물 그림, 초상화 등등 우리나라 옛그림을 설명해주고 있다.
강의했던 내용을 책으로 펴내서 그런지 읽어가면서 지은이의 목소리를 직접 듣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여기에 설명이 필요한 부분은 확대해서 자세히 보여주기 때문에 그동안 미술관, 박물관이나 또는 다른 책에서 보지 못했던 부분도 볼 수가 있다.
옛그림의 아름다움을 알게 하는데 이 책만한 책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부록에 김홍도의 작품을 다시 추려서 설명도 해주고 있으니 눈이 호사하는 기쁨을 누리게 된다.
무엇보다도 반만 년의 역사에 맞게 우리도 엄청난 문화를 지니고 있음을, 문화적 힘이 있는 민족임을 깨우쳐주고 있어서 이 책이 더 반갑다.
21세기는 이제 문화의 세기다. 법고창신이 절실히 필요한 요즘이다. 법고창신은 학교교육부터 시작했으면 좋겠는데...그런 노력을 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