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이 생각나는 요즘이다.  정말로 절망한 자들은 대담해지는 법이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이제는 앞으로 나아갈 일밖에는 없다. 나아가야만 한다. 그러니 대담해질 수밖에.

 

이 구절은 니체가 어느 책에서 했는지 잘 모른다. 다만, 최승호의 '인식의 힘'이라는 시에 작은 제목으로 딸려 있는 구절을 발견한 것이다.

 

니체가 참으로 마음에 와 닿는 경구들을 남겼지만, 이 말 역시 마음 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특히 요즘 세태와 관련해서는 더더욱 마음에 와닿는 말이다.

 

세월호...강정...밀양...평택...핵발전소...4대강...비정규직...군대내 폭력...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저질러지는 온갖 부정부패...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을 넘어서 우리를 절망에 빠뜨리는 것들이다.

 

여기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우리나라를 방문했었다. 낮은 곳으로 임하려는 그. 그는 어려운 사람들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었는데...

 

어떤 사람은 이런 장면을 보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마치 학대받는 아이들의 모습 같았다고... 누군가 자신을 위로해줄 사람이 있으면 그에게 매달릴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 같다고...

 

그래서 교황의 방문과 교황의 그런 모습이 더더욱 슬프게 다가왔다고...

 

교황이 방문해서 보인 모습과 대비되는 모습이 사회 곳곳에서 보이고 있어서 더욱 깊은 절망을 이끌어내고 있는데...

 

마음이 착잡하고, 무언가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만들어내고 있는 요즘... 답답함에 마음이 너무 무거웠는데...

 

우연히 다시 김수영의 시를 접하게 되었다.

 

그때 아, 바로 이것이구나... 이런 심정이구나. 이렇게 시가 내 마음을 표현해주고 있구나 하는 생각.

 

그의 시 '절망'이다.

 

절망

 

풍경이 풍경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곰팡이 곰팡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여름이 여름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속도가 속도를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졸렬과 수치가 그들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바람은 딴 데에서 오고

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고

절망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

 

김수영전집1.시 , 민음사. 1984년 5판. 247쪽

 

 

가만히 생각해 보면 풍경이나 곰팡이나 여름, 속도는 김승희의 시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당연과 물론의 세계'에 들어간다. 그런데 이런 '당연과 물론의 세계'에 '졸렬과 수치'와 같이 당연과 물론의 세계에 들어가서는 안되는 것들이 포함되어 있다.

 

당연과 물론이 되어서는 안되는데... 지금까지 우리는 졸렬과 수치처럼 우리 자신에게 해당하는 것들도 우리 자신에게 속하지 않은 것처럼 생각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졸렬과 수치가 반성을 하지 않으니 당연히 절망이 반성을 할 이유가 없고, 절망이 반성을 하지 않으니 세상은 그냥 그대로 그렇게 '당연과 물론의 세계'로 굴러가고만 마는 것이다.

 

하여 우리가 이렇게 '당연과 물론의 세계'에 물들어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동안에 구원은 우리 스스로 찾을 수가 없다. 따라서 이 시에서 말한 것처럼 '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게 된다.

 

이를 우리는 교황에게서 구원을 바라고 있지는 않았는지... 그래서 교황에게 그렇게 열광하고, 교황이 떠난 다음에도 교황에 대한 이야기가 끝을 보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러나 구원은 이렇게 밖에서 오지 않는다. 교황은 우리에게 많은 위안을 주고 갔지만, 결국 우리 자신을 구원할 주체는, 절망에서 벗어나게 할 주체는 바로 우리들 자신이다.

 

이 시에서 처럼 구원이 '예기치 않게' 온다면 절망은 결코 반성하지 않는다. 그렇게 반성하지 않는 절망을 반성하게 만들 수 있으려면 대담해져야 한다.

 

절망한 자들이 대담해지지 않으면 절망은 절대로 반성하지 않는다. 그러면 우리는 절망에 빠져 그 절망조차도 '당연과 물론의 세계'로 받아들이게 된다.

 

1960년대에 쓰여진 김수영의 시...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무언가를 제시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절망에 빠진 마음... 절망에서만 허우적대고 있던 나... 그러나 니체의 말처럼 '대담'해져야 한다. 그래야 절망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 시는 그것을 말해준다. 김수영은 자신이 비록 '작은 것에만 분노한다'고 스스로 자책하기도 했지만, 그는 시를 '온몸으로 썼'던 시인... 그래서 대담했던 시인이다.

 

그런 대담성... 절망의 이 시대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 역시 대담해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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