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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선거를 보면서 든 생각. 녹색당을 찍으면 사표가 된다고, 의미 없는 투표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소수 정당에 투표를 하면 안된다고... 될 만한 정당을 찍어야 한다고. 최선이 아닌 바에야 차악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고.
그러나 그렇다고 자신들의 목소리를 언제까지 남들에 의탁해서 내려고 하는가?
비록 소수 정당이라고 하더라도 꾸준히 자신의 목소리를 내야 하고, 적은 수의 사람이라도 지지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는데... 투표가 끝난 다음 녹색당의 득표가 얼마나 될까 궁금해서 찾아 보았다.
2년 전에 녹색당의 득표율이 0.48%, 103,811표였다. 정당이 해산되었다가 정당법의 개정을 거치는 우여곡절 끝에 다시 녹색당의 이름을 걸고 지방자치 선거에 도전했는데...
몇 %인지는 계산을 해보지 않았다. 선관위에 들어가 광역시비례대표 득표수를 계산해 보았더니, 170,522표가 나왔다. 2년 전보다는 7만표 정도 더 얻었는데,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급진적인 정당은? 또는 가장 좌파인 정당은?이라는 질문을 하면 대답이 각양각색으로 다양하겠지만, 우리나라 정당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고 알고 있는 사람은 그에 대한 답을 "녹색당"이라고 한다.
녹색과 좌파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사실 녹색은 지금 체제를 부정하면서 우리가 살 길을 찾아야 한다는, 근본부터 다시 살펴야 한다는 가장 급진적인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녹색이 편안함을 주지만, 그 편안함은 바로 우리가 자연과 사람과 함께 할 때만이 서로가 함께 공존할 때만이 주어질 수 있음을 녹색당은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공약을 내걸고 광역자치단체 비례대표로 출마를 했다. 정당의 이름으로. 지난 번보다는 더 나은 결과를 얻으리라는 생각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도 지금 이 시대에 녹색당을 알린다는 목표로, 이런 정당도 있다는 것을, 녹색당의 정책을 알린다는 목표로 나왔다고 하는 편이 더 좋을 듯하다.
광역자치단체 어느 곳에서도 5%이상을 득표를 하지 못해 아마도 비례대표를 내지는 못했을 거 같은데, 그래도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
그 나아감을 보며 황규관의 시집 "패배는 나의 힘"이 생각났다.
이 시집에 실린 시들 중에 녹색당과 어울리는 시들이 많이 있고, 또 제목이 된 '패배는 나의 힘'은 지금의 녹색당을 너무도 잘 말해주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시를 보자.
패배는 나의 힘
어제는 내가 졌다
그러나 언제쯤 굴욕을 버릴 것인가
지고 난 다음 허름해진 어깨 위로
바람이 불고, 더 깊은 곳
언어가 닿지 않는 심연을 보았다
오늘도 나는 졌다
패배에 속옷까지 젖었다
적은 내게 모두를 댓가로 요구했지만
나는 아직 그걸 못하고 있다
사실은 이게 더 큰 굴욕이다
이기는 게 희망이나 선(善)이라고
누가 뿌리 깊게 유혹하였나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다시 싸움을 맞는 일
이게 승리나 패배보다 먼저 아닌가
거기서 끝까지 싸워야
눈빛이 텅 빈 침묵이 되어야
어떤 싸움도 치를 수 있는 것
끝내 패배한 자여
패배가 웃음이다
그치지 않고 부는 바람이다
황규관, 패배는 나의 힘, 창비 2014년 초판3쇄. 72-73쪽
이 시에서 말하고 있듯이 녹색당은 해야 할 일이 있다. 그래서 이들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패배를 웃음으로 다시 시작한다.
그러나 녹색당의 싸움은 배제가 아니라 품는 것에 있다. 이들은 모든 것들을 품으려 한다. 그래서 모두 함께 살자고 한다. 그런 지난한 싸움... 녹색당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황규관의 또 다른 시 '품어야 산다'를 보면 아마도 이런 자세가 바로 녹색당이 지향하고 있는 자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비록 미미하지만, 정당법, 선거법을 개정해서 녹색당이 자신의 목소리를 당당히 내면서 남들을 품는 정책을 펴기를 바란다.
적어도 이런 정당이 우리나라에 있어야 하지 않을까?
품어야 산다
어머니가 배고픈 아기에게 젖을 물리듯
강물의 물살이 지친 물새의 발목을
제 속살로 가만히 주물러주듯
품어야 산다
폐지수거하다 뙤약볕에 지친
혼자 사는 103호 할머니를
초등학교 울타리 넘어온 느티나무 그늘이
품어주고,
아기가 퉁퉁 분 어머니 젖가슴을
이빨 없는 입으로 힘차게 빨아대도
물새의 부르튼 발이
휘도는 물살을 살며시 밀어주듯
품어야 산다
막다른 골목길이 혼자 선 외등을 품듯
그 자리에서만 외등은 빛나듯
우유배달하는 여자의 입김으로
동이 트듯
품는 힘으로
안겨야 산다
황규관, 패배는 나의 힘, 창비 2014년 초판3쇄. 104-10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