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 단체장 선거가 끝나고, 광역단체장과 기초단체장, 광역의원, 기초의원, 교육감이 뽑혔다. 이들은 이제 4년간 지방자치를 실시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단체장이라고 하면 남 앞에 나서서 남들을 이끌어야 할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거꾸로 공무원이 국민의 종이라면, 단체장은 시민의 뜻을 대변해서 행하는 대리인이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그들은 군림하는 자들이 아니라 섬기는 사람이어야 하는데, 몇 천 년 전에 살았던 맹자의 말에 의하면 군주는 배고, 백성은 물이라고 했다 배가 제 맘대로 가는 것 같지만, 물이 없으면 배가 갈 수 없고, 또 배가 제대로 가지 않으면 물이 배를 엎어버릴 수도 있다는 그런 말.

 

하여 이번에 뽑힌 지방자치 단체장들은 자신들이 바로 물 위에 위태롭게 떠 가는 배라는 생각을 하고, 물의 흐름을 거스리지 않는 정책을 펼 수 있기를 바란다.

 

우연히 황규관의 시집을 읽게 되었다. 꼭 지방자치 단체장 선거와 맞물리는 것은 아니지만, 이 시집에 첫번째로 실린 시가 눈에 확 들어왔다.

 

내가 세운 뜻

 

나이 서른을 몇 년 넘기고서야 뜻 하나 세운다

뭐 그리 큰 뜻은 아니고

인적도 드문 벌판 한 가운데

나무 한그루로 서는 것이

이제사 슬며시 바래보는 소망이다

저 울울창창한 산자락의 숲이

얼마나 보기 좋으냐, 하지만

아무래도 내 자리는

가끔 지나는 새가 한번씩 앉아 쉬고 

그늘이라고 해야 듬성듬성 뙤약볕 내리쬐는

못난 그림자 한 뼘 있으면

좋겠다는, 뜻 하나 세운다

정말 아무래도 그 모습이 내 본모습인 것 같아

나도 가슴이 서늘해지지만

부는 바람에 다른 세상 소식 귀동냥하고

새의 낯빛으로

내 벗들 근황 읽어내면 그만이지

나이 서른을 몇 년 넘기고서야

뜻이라고 세워본다

혼자 묻고 혼자 답하고

내 잎에게

땅 속 벌레 얘기 전해주는 뜻,

이제사 슬며시 세워본다

 

황규관, 물은 제 길을 간다, 갈무리. 2000년. 9쪽-10쪽 

 

이렇게 소박하게 자신의 위치를 소망하는 사람. 남 앞에 서되, 남 위에 군림하지 않고 남과 함께 가는, 그래서 남에게 작은 그늘이나마 줄 수 있는 그런 사람.

 

너무 많은 것을 욕심내지 않고 작은 것에 만족하며 사는 사람.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겠다는 소망, 참 작은 소망같지만 너무도 큰 소망이다. 이런 사람이 되기가 얼마나 힘든지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단체장이 되면 이런 작은 소망을 세웠어도 지키기가 힘들다. 이것이 작은 소망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단체장들, 정말로 남에게 그늘이 되어 줄 수 있는 그런 정책을 펴는,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감추어도 남들은 편안해질 수 있는 그런 정책을 펴겠다는 소망을 세웠으면 한다.

 

하여 그런 소망은 이렇게 이루어내야 한다. 그는 '폭포'라는 시에서 말한다.

 

폭포

 

물이 비명을 지른다

 

곤두박질이 두려워서가 아니다

먼바다로 가는 길에

꼭 맞아야 할 제 운명에

물이 소리를 지른다

공포에 질린 괴성이 아니라

온몸을 던져 저를 부수는 파열음이다

숲도 그 소리에

한결 더 푸르러진다

떨어져야 하는 운명 없이

누구도 빛나는 바다에 다다르지 못한다는 걸

물은 아는 것이다

물은 제 비명에 담긴

운명에 대한 남김 없는 사랑을

쉴새없이 내지른다

날벌레 한 마리까지 비추는 마음도

자신에 대한 아득한 사랑부터라고

 

황규관, 물은 제 길을 간다. 갈무리, 2000년. 15쪽-16쪽

 

남에게 작은 그늘이 되고 싶다는 소망, 다른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겠다는 소망, 결코 작은 소망이 아니다. 이 시에서 말하는 '빛나는 바다'다. 이 '빛나는 바다'에 가기 위해서는 자신을 온전히 내던져야 한다. 자신을 내던지는 울음소리, 온몸이 내지르는 소리를 자신이 들을 수 있어야 한다. 내가 그렇게 살 때 나 자신도 잘 살게 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된다는 사실...

 

이 두 시를 읽고 마음에 새기는 단체장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소수의 이익을 위해서 정책을 펼 수는 없으리라. 그들은 약한 사람을 위해서, 힘든 사람을 위해서,무언가가 필요한 사람을 위해서 정책을 펼칠 수 있으리라. 그러면 그들은 '빛나는 바다' 즉 자신이 가고자 했던 곳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

 

시인 김수영은 이 시와 같은 제목의 시에서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를 부른다'고 했다. 물은 저 혼자 흐르지 않는다. 함께 흐른다. 함께 흐르면서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 그래서 물은 곧 시민이다. 국민이다.

 

새로 출범하는 자치단체장들... 시민이 물임을, 자신들은 물 위에 떠 있는 배에 불과함을 명심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들은 거창한 정책이 아니라 시민들이 자유롭게, 언제든지 편하게 쉴 수 있는 그늘을 마련해주는 일에 '폭포'처럼 온몸을 던져 나서주었으면 좋겠다.

 

그들이 그렇게 하도록 지켜보는 존재, 길을 알고 제 길을 가는 존재, 그것이 바로 우리 '시민들'이니... 우리 역시 두 눈 똑바로 뜨고 우리의 길을 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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