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부터 사서 읽고 싶었던 시집. 망설이고 망설이고, 또 때를 놓치고. 결국 나온 지 8년이 지나서야 내 손에 들어오게 된 시집.

 

이 시집이 나올 때 꼭 사서 봐야지 하게 하는 마음이 들게 했던 것은 시로 쓴 시론이라는 광고 문구였다.

 

시인이 시란 자고로 이래야 한다고 시로 썼다는데, 어떻게 썼는지 궁금하고, 많은 시인들이 시에 대하여 또 시인에 대하여 시로 썼지만, 시 가르치기에 대하여 시로 쓴 경우는 드물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시집을 구해 읽기는 쉽지 않은데...

 

헌책방에 갔는데... 이 시집에 눈에 딱 들어온 것. 망설이지 않고 집어들었다. 이런 기회를 놓칠 수가 있는가.

 

이것이 헌책방에 다니는 기쁨 중 하나 아니겠는가.

 

마음에 담아 놓았던 책들을 구할 수 있다는 기쁨. 그것도 싼 가격에. 한참을 잊고 지냈던 그 책들을 헌책방이라는 공간에서 만나고, 또 다른 사람의 손때가 묻은, 이미 다른 사람의 마음에 꽂혀 있던 책을 내가 만나게 된다는 것.

 

시집의 앞부분에 실린 시들보다 역시 내게 기대를 걸게 했던 시가 마음에 와닿았다. 목적을 달성한 셈.

 

한 시집에서 마음에 드는 시 한 편만 발견해도 그 시집은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고 할 수 있는데... 이 시집에서는 한 편을 넘어서 서너 편이 되니... 대만족이다.

 

그런 시 중에서 '기침이 난다' 이 시는 시를 가르치는 일뿐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교육의 평가와 관련지어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시다. 마음이 아픈, 그래서 기침을 할 수 있는, 무언가 내 안에 있는 것들을 뱉어내야만 하는.

 

김수영은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고 했는데... 강희근은 기침이 난다고 했다. 기침이 난다. 내 몸 속에서 거부하는 몸짓이 자연스레 일어나고 있는 것.

 

우리는 이런 부조리한 평가를, 부조리한 교육을 온몸이 거부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그 깨달음이 교육의 변화로, 평가의 변화로 나아가게 해야 한다.

 

그런 생각이 들게 한 시다. 그런 시집이다. 이 시집의 마지막 부분은 그래서 읽을 만하다. 국어교사들뿐만이 아니라, 교육에, 또 시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기침이 난다

- 강희근

 

   내가 대학생일 때 비평가 J씨를 만났는데, 대뜸 “O대학 P교수가 시를 채점하는데, 아니 P시인이 시를 채점하는데 616263점 이렇게 하고 있어요. 시가 그렇게 채점이 되는 거예요? 그게 양심 있는 시인이 할 수 있는 일이에요? 차라리 시인을 포기하든지……하고 말하는 것 아닌가. 나는 그때 사람을 감정으로 비판하는 것 빼고는 맞는 말씀이라고 맞장구 쳐 드리고 싶었지만 우리나라 중견 시인에 관한 일이라 머리만 긁어 어정쩡, 넘어갔다

   놀라운 것은 내가 지금 O대학 P교수, 그 시인처럼 시를 채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내가 개발한 맛보기 이론이나 아침마다 졸작 생산에 목숨을 끌어 넣고 있는 일이나 시가 아니면 아무것도 관심이 없는 내 시의 식구들을 생각해 보면 거기 616263점이 놓여질 수 있는 일인가 아, 이 시 채점의 모순, 줄 세우는 껄끄러움, 기침이 난다

   스스로의 잠자리 등 같은 무능, 기침이 난다 창작론’ ‘문학의 이해시간에 참새 입으로 줄줄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함께 시를 읊었던 저 사랑하는 무공해의 새순들, 그 머리 위에다 점수를 갖다 얹고, 교수라고 함부로 12점 차등을 주어 놓고, 제도 때문에, 제도가 이유야……하고 그냥 저냥 넘어온 그 확실한 직무유기, 기침이 난다

   태형 1천대 이상 기소 가능한 죄인 너 시인이냐, 대학생일 때 친구 조정래가 화가 나 내게 말했던 강희근이 너 시인이냐?”하고 다그쳤던 그 냄비 뚜껑 같던 말, …… …… 시인이냐 기침이 난다

(강희근, 기침이 난다. 한국문연. 2005.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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