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상봉이 몇 년만에 이루어졌다.
남과 북.
물리적 거리로는 얼마되지 않는데... 만나는데 몇 십년이 걸린다. 마치 서정춘의 시 '죽편1'에서 '대꽃이 피는 마을까지 백년이 걸린다'고 노래하듯이 너무도 긴 세월을 흘려보내고 말았다.
해마다 몇 천 명씩 만나도 시원찮을 판에, 한 번의 만남에 남과 북이 각 100명씩이니... 그것도 해마다 정기적으로 정해져 있으면 몰라도, 남북관계가 얼어붙으면 이산가족 상봉은 물건너 가버리고 마니, 언제 자기 차례가 올지 알 수가 없다.
이산가족을 만나기를 기다리다 기다리다 끝내 가족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조금 늦었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이렇게라도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지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전쟁으로 서로의 생사를 알지 못하고 지내온 세월이 너무도 길어서, 이제는 만나야 하는데... 이러한 인륜 앞에, 천륜 앞에 이념은 무엇이던가.
무엇보다도 서로 만날 수 있게, 서로 교류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정치가들의 임무 아니던가. 그들의 의무인데, 이런 교류가 활발히 일어나지 않는 책임은 정치가들이 져야 한다.
'통일대박'이라는 말보다는, 작은 것, 즉 헤어진 가족이 다시 만나는 일, 서로가 서로서로 교류할 수 있게 하는 일. 기왕에 해오던 개성공단부터 시작하여 경제협력을 해나가는 일. 예전처럼 남북단일팀을 만들어 세계대회에 참여하는 일.
문인들은 작품으로 교류하고, 언어학자들은 남북공동사전을 만들려는 노력을 하고, 학자들은 학문적 교류를 하면서... 서로의 긴장을 풀고 협력하는 상태가 된다면 통일은 멀리 있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이산가족의 아픔도 어느 정도 줄어들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통일대박'을 이야기해야 한다.
고은의 시집을 펼치게 되었다. "남과북" 우리의 국토를 남과 북 어느 한쪽에 국한시키지 않고 옛날처럼 남과북의 장소들을 노래하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장소, 이 공간, 바로 한반도는 남과북을 모두 포함하고 있음을, 북한에 있는 그 땅들도 바로 우리임을 이 시집에 말해주고 있다.
시인은 후기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 시편 [남과북]은 남과 북의 수준 낮은 정치 현실로부터 비정치적인 조율과 문화로서의 음향을 지향하는 분단 이전의 노래이기도 하고 분단현실의 몇 단면에 다가가는 노래이기도 하고, 더 나아가서 분단 이후의 어떤 시기에 들어맞는 노래이기도 하기를 하는 바라고 있는 것이다. (255쪽)
이 시에서 표현하고 있듯이 우리 조상들의 삶의 흔적이 녹아 있는 장소들, 그 장소에서 남과북, 우리 모두는 살아가고 있다.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는 모습. 그것이 바로 통일의 시발점이 아닌가 한다.
남쪽에서 북쪽으로, 북쪽에서 남쪽으로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사회, 그래서 가족들이 헤어져 서로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고 지내지 않도록, 또 살아있음을 알고도 단 한 번의 만남으로 더 이상 함께 있지 못하는 세상이 되지 않게... 그렇게...
이 시집에서 노래한 "남과북"이 모두 우리임을.
두 편의 시를 보자. 이것이 바로 남과북이 지녀야 할 자세가 아닐런지.
이산가족들의 아픔이 하루빨리 씻겨내려가기를 바라면서...
이제 입춘도 우수도 지났다. 봄이다. 꽃소식. 계속 되기를 바란다. 그러면 곧 단풍도 멋지게 들테니...
꽃소식
봄입니다 만물이 자유자재합니다
꽃소식이
세상의 가난을 달랩니다
누구는 불쌍하다고
누구는 불쌍하지 않다고 말하는
미완성의 나라 온통
봄입니다
이 나라 남쪽
제주도에 피는 진달래
며칠 뒤에는
바다 건너
전라남도
경상남도에 피어납니다
며칠 뒤에는
중부 한강 기슭
춘천 소양강 기슭에 피어납니다
한달쯤 지나
북한 압록강 상류
혜산 일대에 피어납니다
5월 하순
표고 2천7백 미터쯤에
수목한계선 밑 추운 봄에
진달래는 울긋불긋 피어납니다
이것이면 됩니다
더이상 바랄 나위 없습니다
어디메 봄날 꽃만한 것 있겠습니까
남과 북 차츰 가지런히
고은, 남과북, 창작과비평사. 2000년. 82-83쪽
단풍
구원이란
컴컴한 신념보다 종교보다
별이
꽃이
기어이 가을 단풍이 아주 많이 맡아온 것을 알고 싶다
한반도 북쪽 끝 두만강 상류 무산
첩첩산중
거기 사람은 없고
홍단수
단풍 가득하였다
한달 뒤
강원도 금강산이 온통 단풍이었고
이내 내려와 설악산의 단풍이었다
한달 뒤
호남 내장산 단풍이었다
바다 건너
제주도 한라산 위층은
벌써 빈 나무들이고
아래층은 아직 하루이틀 더 단풍이었다
이렇게 봄 꽃소식 북으로 가고
이렇게 단풍 소식
남으로 남으로 오는데
그동안의 동포들 남과 북에서
수고 많은 날들
그 찬란한 단풍으로
가슴 훤히 구원받아왔으니
이제 더이상 구원받지 않아도 좋아라
그저 단풍이면
어머
어머 소스라쳐 기쁘고
단풍 가면
아이고 어쩌나 안타까워하다가
한밤중 북극성 하나 바라보면
거기 내일이 있어야 한다
고은, 남과북, 창작과비평사. 2000년. 98-9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