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겠다” - 고병권이 만난 삶, 사건, 사람
고병권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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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며 거리의 인문학이라는 말을 생각하게 되었고 인문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인문학 하면 뭔가 심오한 철학을 연상하고, 아무나 할 수 없는, 무언가 특별한 지식을 얻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학문이라고 지레짐작하고는 인문학에 거리를 두는 경향이 있는데... 이 책의 저자인 고병권은 인문학은 우리의 삶에서 멀어지는 학문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삶이라고 한다.

 

그가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 전혀 인문학과 관계가 없을듯한 사람들과 인문학을 통하여 만나면서 그는 인문학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보다는 우리 삶에서 인문학을 발견하는 점에 중점을 둔다.

 

즉 그가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앎을 참조하는 질문'이 앎을 앎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면, 우리가 흔히 만나는 장삼이사들은 '삶을 참조하는 질문'을 하는데, 이런 질문은 곧 삶을 앎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먼 얫날 철학자들을 인용할 필요도 없이 앎이란 곧 삶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가 곧잘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반성이 된다.

 

삶이 되지 않는 앎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아무리 대학 강단에서 고담준론을 논하더라도, 그것이 우리의 삶과 거리가 있다면 그것은 그들만의 리그, 그들만의 잔치에 불과하게 되지 않겠는가.

 

정녕 인문학은 이러한 강단 철학, 강단 인문학이 아니라, 삶과 밀접히 관련이 되어 있는 거리의 인문학, 삶의 인문학이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가 경험한 일들을 담담히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 이야기들을 통하여 우리는 인문학이 우리 삶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그래서 이 책에서 이야기한 몇가지 개념이 머리 속에 계속 남아 있다. 바로 "빵과 장미"라는 말인데, 우리에게는 빵도 필요하지만 장미도 필요하다는 사회적 소수자들의 외침이 바로 그것이다.

 

생계를 보장하는 활동만이 아니라, 삶을 삶이게 하는 어떤 요소들을 필요로 한다는 말, 인간에게는 밥만이 아니라 바로 희망이라고 할 수 있는 어떤 무엇이 더 필요하다는 말이다.

 

오도엽이 엮은 "밥과 장미"라는 책도 있듯이 인문학은 바로 이러한 소수자들에게 그들에게 주어질 것은 시혜가 아니라 함께 함이라는 사실, 그들이 이 사회를 바르게 보고, 자신의 삶을 직시하며,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힘을 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장미'라는 개념을 통해서 알 수 있게 된다.

 

이런 논의에 비추어 "옹이"란 말이 머리 속에서 맴돌았다. 톱질이나 대패질을 해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알리라. 옹이가 얼마나 단단한지. 그 옹이를 벨 때 얼마나 힘이 드는지. 옹이가 나무가 겪은 상처라고 한다면, 나무의 상처는 너무도 단단하고, 지울 수 없는 흔적을 지니게 되는데...

 

그러나 그 흔적이 단지 상처로만 남지 않고 꽃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옹이라는 사실. 나무에 있는 옹이는 얼마나 멋진 무늬로 남을 수 있는지, 옹이를 옹이대로 받아들인 사람은 알고 있다.

 

이렇게 옹이를 상처가 아닌 무늬로 바꿔주는 힘. 그것이 바로 인문학이다. 거리의 인문학. 그것은 상처를 상처로 인정하고, 상처가 덧나지 않게 해주는 일회성 처방이 아니라, 상처를 상처로 받아들이되, 상처가 무늬가 될 수 있음을 알게 해준다.

 

하여 이 책을 읽어가면 온갖 상처가 나오지만, 그 상처가 상처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들의 상처를 직시하며, 상처를 아름다운 무늬로 만들어가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이들이 인문학을 통하여 상처를 무늬로 만들어가고 있음을.

 

그래서 '철학은 앎이지만 또한 행함'(15쪽)이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 더욱 확신하게 되었다.

 

인문학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이 때, 정말로 우리를 살리는 것은 인문학임을 잘 보여주고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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