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방황하는 개인들의 사회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홍지수 옮김 / 봄아필 / 2013년 7월
평점 :
품절
시민의 최악의 적은 개인
바우만의 책을 계속 읽고 있다. 비슷한 내용도 있지만, 아무래도 읽으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줘서 자꾸 읽게 된다. 이번 책의 제목은 "방황하는 개인들의 사회"다. 사회가 사람들을 개인으로 파현화시켰다. 그래서 파편화된 개인들은 뭉치지 못하고 흩어진 삶을 살게 된다. 사회적 동물이라는 사람이 개개인으로 흩어진 삶을 살게 되니 자연스레 방황할 수밖에 없다.
이렇듯 개인으로 파편화된 사회에서는 시민은 형성되기 힘들다. 우리나라만 봐도 1980년대까지 형성되었던 수많은 시민단체들이 지금은 이름만 유지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우리 사회도 개인적으로 파편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의 범람으로 공동체라는 이름보다는 개인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일들이 더 많아졌으며, 책임을 개인이 질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개인들은 사회의 문제도 개인의 문제로 치환하게 되고, 함께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려 하기보다는 그것은 내 책임이겠거니, 내 능력이 이것밖에 안 되겠거니 하면서 포기하는 경우가 많게 된다.
이러한 개인들이 많아지는 사회에서는 자연스레 공동체의 문제라는 인식은 사라지게 된다. 우선적으로 노조가 힘이 없어지고... 이제는 노조의 조직율이 30%정도도 안 되는 사회가 되었고, 노조의 파업은 그들만의 파업이지 나와는 상관없는 그러한 일이 되어 버렸을 정도가 되었다.
노조의 약화와 더불어 각종 시민단체들의 활동도 줄어들게 되었다. 사회 곳곳에서 여러 문제들이 불거지고 있지만, 그러한 문제들을 통합하는 시민 운동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 여기저기서 그들만의 운동이 일어나고 있을 뿐이다. 그만큼 우리 사회도 시민이 형성이 되고 있지 않다고 보아야 한다. 그만큼 개인주의가 만연해 있으며, 공동체에 대한 환멸이 작동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아마도 IMF이후 우리 사회가 겪은 문제가 아닐까 싶다.
이렇게 개인주의화되어 시민이 사라져 가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이것이 바우만이 직면한 문제가 아닐까. 공공성을 회복하는 일. 광장을 찾는 일. 그것이 바로 깨어있는 사람들이 해야 할 일 아닐까.
그래서 치열하게도 바우만은 우리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그가 말하듯이 현실을 지배하는 사람이 미래도 지배하기 때문이다. 현실을 지배하기 위해서는 현실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처한 현실. 권력은 시민을 해체해서 개인을 형성하려고 하는 현실. 그래서 노조의 파업에는 구속도 구속이지만 소송을 통해 개인에게 책임을 지우는 형식을 택하고 있다.
개인주의를 권력은 조장하고, 책임을 개인에게 물음으로써 자연스레 사람들은 불안감을 지니게 되고, 이런 불안감은 시민으로서 공적 영역에 참여하는 길을 막게 된다.
우리는 소비자가 된다
이런 개인주의화된 사회에서 개인들은 자신들의 행동을 생산자가 아닌 소비자로 규정하게 된다. '돈'이 지배하는 사회. 개인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만 하게 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 중에서 자신이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일을 찾게 된다.
가장 쉽게 찾아지는 것이 바로 소비자로서의 삶이다. 소비자로서의 삶을 잘 보여주고 있는 내용으로 바우만은 '야영지'에서의 모습을 예로 들고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책임하에 야영지에 온다. 여기서는 공동체의 삶은 중요하지 않다. 오로지 야영을 할 수 있는 개인적인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와서 자신들의 능력과 책임만큼 머물다 간다. 혹 야영지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것을 힘써 고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고치는 데에까지 자신이 책임을 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냥 오지 않거나, 아니면 자신이 불편해하는 사항만 고치면 된다. 나머지는 다른 개인들에게 맡기면 된다. 여기서는 함께 함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개인의 행동만이, 개인의 책임만이 있을 뿐이다.
이것이 바로 소비자의 삶이고,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시간과 공간을 야영지로 만들고 있다고 바우만은 주장한다. 아니, 우리가 만드는 것이 아니고 권력이 만드는 것인데... 권력은 이렇듯 사람들을 철저하게 개인으로 만들어 개인으로 행동하게 함으로써 자신이 들여야 할 비용을 줄인다. 소비자 사회에서 소비자로만 살아가는 개인들이 겪게 되는 문제가 바로 이것이다.
내 형제는 내 책임
이런 개인들의 사회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그것은 이 책에 나오는 카인의 예에서 찾을 수 있다.
내 형제는 바로 내 책임이라는 생각. 이것은 바우만이 주장하듯이 기본적인 윤리이기도 하겠지만, 개인주의화된 사회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내 형제를 꼭 말에 집착하여 가족으로 국한시킬 필요는 없다. 내 형제는 나와 같은 형체를 지닌 인간으로 해석을 해야 한다.
인류의 형제애. 그것이 바로 개인들의 사회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예전에 복지국가라는 이름으로 시도되었다.
지금은 이러한 복지국가, 즉 사회복지를 근로복지로 바꾸려는 움직임이 전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데, 근로복지는 일하는 사람들만을 위한 복지로 일하지 않는 내 형제에게는 내 책임이 없다는 주의이다. 이것이 바로 개인들의 사회이고, 시민이 실종된 사회이다.
우리 모두가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 그것을 인정할 때 개인들의 사회를 극복할 수 있는 단초가 열린다. 적어도 사람들이 기본적인 생존에 대해서 불안해 하지 않을 때 그 때 사람들은 생활로 나갈 수가 있으며, 사적 공간에서 공적 공간으로 나갈 수 있는 동인을 얻게 된다.
그러므로 사회복지는 지금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고, 이런 방법 중에 하나로 제시되고 있는 것이 바우만은 지나가는 말로 제시하고 있지만, 기본소득을 보장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기본소득을 국가가 또는 사회가 보장해주면 사람들은 사적인 공간에서 자신의 사멸에 대해서 불안해하지 않아도 된다. 적어도 생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기에 사람들은 공적인 공간으로 나오게 된다. 그리고 공적인 공간에서 서로 다른 말들을 해석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된다.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다. 혹자는 민주주의와 사회복지는 함께 가지 않는다고도 하는데, 바우만의 이 책을 읽다보면 민주주의는 사회복지와 함께 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회복지와 민주주의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니, 복지 예산을 두고 포퓰리즘이니, 사회주의니 하는 사람들은 이 책을 읽어봤으면 좋겠다.
바우만의 이 책을 읽다보면, 이제 사회의 불확실성 속에서 개인들이 얼마나 불안해 하는지, 그러한 불안이 개인주의를 부추기고, 이러한 개인주의가 시민을 사라지게 하고 있으며, 시민의 사라짐이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장치로 작동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렇다면 무엇부터... 우선 우리 사회의 기본적인 복지부터 확립하여 내 형제는 내 책임이라는 윤리성을 회복하는 일부터. 그 다음에는 사적인 공간으로 후퇴했던 개인들을 공적인 공간으로 불러내어 시민을 형성하는 것. 이것이 방황하는 개인들의 사회를 벗어날 수 있는 길이다.
이 책은 그 점을 너무도 잘 보여주고 있다. 현대 사회를 적실하게 분석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