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된 시집이다. 하긴 성석제의 첫 시집이라고 하니. 그를 누가 시인으로 기억하고 있을까.

 

성석제는 소설가로 우리에게 더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가. 마치 황순원이 소설가로서 알려져 있지 그가 처음에는 시를 썼다는 사실을 잘 모르듯이.

 

집에 있는 시집들의 제목을 보다가 어라, 성석제 시집도 있네. 내가 산 것은 아닌데... 지금 나와 같이 사는 사람이 산 시집인가 보다.

 

읽어보지 않았는데, 이 책은 읽히지 않는 낯섬을 견디고 책꽂이에서 다시 펼쳐지길 기다리고 있었나 보다. 이제는 헌책방에서나 구할 수 있는 책이 되었는데...

 

제목도 마음에 든다. "낯선 길에 묻다"

 

우리는 모두 낯선 길을 간다. 인생이란 바로 이러한 낯선 길을 걸어가는 여행 아니던가.

 

낯설기에 가슴이 두근거리는, 그리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는, 우리에게 무언가를 느끼게 해주는.

 

그런 길을 걸어본 적이 얼마나 오래되었던가. 아니, 요즘은 나이 먹었다는 이유로 낯섬을 의도적으로 피하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던지.

 

시인은 늘 보던 것도 낯설게 볼 수 있는 사람이고, 우리가 시를 읽는 이유는 일상이 단조로움에서 벗어나 낯섬을 만나는 즐거움을 누리기 때문이 아니던가.

 

그래서 이런 낯섬은 반갑기도 하다. 그가 소설가로 유명하다는 사실에서 그의 시집을 만나는 것도 또한 낯선 일이기도 하다.

 

'낯섬'과 '묻다'라는 말이 제목에 있는데, 이런 제목을 가진 시는 이 시집에 없다. 시집 전체를 읽으며 우리는 낯섬을 만나고, 그리고 물어야 하는 지도 모른다.

 

시집 내용이 밝지가 않다. 밝지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슬프다. 너무도 슬프다. 91년에 발간된 시집인데, 그런데도 이 시집에 나오는 내용들이 아직도 진행형이라는 사실이...

 

또 불행하게도, 참으로 낯설게도, 이렇게 된 경우는 거의 없는데, 내가 가지고 있는 이 시집은, 33쪽부터 40쪽이 없다.

 

막내의 여섯 가지 심부름. 아버지와 아들, 수술실. 이렇게 세 편의 시가 빠져 있다. 낯설다. 그것도 모르고 지금까지 이 시집을 지니고 있었다. 이제는 어쩔 수 없이, 이 없음을 받아들이고 함께 해야 한다.

 

나중에 어디선가 이 세 편의 시를 적어서 끼워넣어야 되겠지.

 

이런 불행과 함께 시에 나오는 내용들은 참으로 불행하다. 어둡다. 슬프다. 90년대에는 그로테스크라는 말을 많이 썼나 본데... 지금은 우리가 살아간 현실을 시인이 직시하고 표현했다고밖에는 표현하지 못하겠다. 이 시집에 있는 내용들은 그로테스크가 아니라 우리의 현실이므로.

 

특히 이런 시들은 눈물이 날 정도로 슬프다. 시에 이야기가 있으므로, 그 이야기를 우리가 머리 속에서 생생하게 영상으로 떠올릴 수 있으므로,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시들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이 지금 현실에서 계속되고 있으므로.

 

한 상사. 유리 닦는 사람. 가족1. 하늘 가까운 방. 그리고 3부의 동물이 등장하는 시들.

 

현실임에도 낯설다고, 여기서 물어야 한다고 한다. 20여년이 지났는데... 정말로 이 시집에 나오는  시들이 낯설었으면 좋겠는데... 그래서 당시의 사회 상황에 대해서 공부하고, 이런 일이 있었나 하면 좋겠는데...

 

성석제는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그래서 이 시집에 수록된 시들도 이야기로 되어 있는 시들이 많다. 마치 옛날에 임화나 이용악의 시에 이야기가 나와 있듯이. 그들 시를 '단편서사시' 또는 '이야기시', '리얼리즘시'라고 이름지었듯이 성석제의 시도 그 계보를 잇는다고 볼 수 있다.

 

이야기를 통해 우리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읽으면서도 시의 내용이 머리 속에 그려진다. 그것이 더 큰 울림을 준다.

 

새해 벽두. 20여년이 지난 지금 읽어본 성석제의 시집. 이 시집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2000년대는 1990년대를 또는 1980년대를 낯설게 볼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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